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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081
한자 酒幕距離
영어음역 Jumakgeori
영어의미역 Jumakgeori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오류2동 120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종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마을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 오류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유래]

경인선 철도가 개통되기 전 서울과 인천을 왕래하던 중간 지점인 오류동에는 주막과 대장간을 포함하여 서너 채의 집이 있어 주막거리라고 불리었다.

[형성 및 변천]

구루지마을 뒤편은 산으로 가려져 있고, 이 산에서 흘러내린 크고 작은 시내들이 있는 까닭에 자연히 많은 다리가 생겨났다. 그 중에서도 구루지마을 뒤편에 해당되는 지금의 기아산업 중기사업소 정문 앞에는 꽤 넓은 냇가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곳과는 달리 토교(土橋)가 놓여 있었다.

근처의 야산이 낮기는 하나 당시에는 워낙 숲이 무성하였고, 또 마을의 뒤편이라 후미진 까닭에 한 낮에도 사람들이 혼자서는 다니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이 부근에는 산짐승 가운데서도 특히 늑대가 많았고, 또 도둑들도 이곳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행인의 금품을 가로채기 일쑤였기 때문에 이 다리를 늑대다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복개 되어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현황]

주막거리경인로가 지나는 동부제철 서울제강소와 동부제철연수원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던 지역으로 일제강점기 때는 주막거리와 옛 오류역오류동 87번지 부근이 서울 남서부 지역의 생활권 중심지가 되었다. 늑대다리 부근의 경인가도 변에는 주막과 대장간을 포함한 서너 채의 집이 있었다. 이 주막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경부선경인선의 분기점이 되는 구로역이 있었다.

당시 주막거리에는 중앙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이 되었던 객사가 있었다. 주막거리 객사에는 1930년대까지 일본인 고미네[高峰]가 살았는데, 고미네는 조선 후기 일본인 첩자로 일제강점기 때 동양척식회사 관계자로 알려져 있었다. 한때 이 집은 개성에 있던 전국의 무당 본부를 옮겨왔다가 여론이 좋지 않자 서울로 이전해 가기도 했다. 주막거리 객사는 팔작지붕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안채와 행랑채 등의 부속 건물이 있었는데, 철거되어 새로운 빌딩이 들어서고 자리에 다만 표석만 남아 있을 뿐이다. 광복 후에는 조준기라는 사람이 살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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