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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407
한자 李仁老
영어음역 Yi Inro
이칭/별칭 득옥(得玉),미수(眉叟),쌍명재(雙明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안홍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152년연표보기
몰년 1220년연표보기
본관 경원(慶源)
대표관직 좌간의대부|안남도호부관기

[정의]

고려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경원(慶源). 초명은 득옥(得玉), 자는 미수(眉叟), 호는 쌍명재(雙明齋). 고려 전기의 명문가 경원이씨(慶源李氏)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낸 이오(李䫨)이고, 할아버지는 공부상서 우복야(工部尙書右僕射) 이언림(李彦林)이며, 아버지는 좌상시(左尙侍)를 지낸 이백선(李伯仙)이다.

[활동사항]

화엄승통(華嚴僧統) 요일(寥一)이 부모를 여윈 이인로(李仁老)[1152~1220]를 거두어 양육하고 공부를 시켰는데,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다. 1170년 무신난 당시 “문관을 쓴 자는 서리(胥吏)라도 죽여서 씨를 남기지 말라”는 말에 피신하여 불교에 귀의하였다가 5년 후 환속하였다. 1176년(명종 6) 태학에 들어가 육경을 공부하였으며, 1180년(명종 10) 진사과에 장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다.

1182년(명종 12) 금나라 하정사행(賀正使行)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수행하였고, 다음 해 귀국하여 지금의 구로 지역을 포괄하는 안남도호부사로 임명되었다. 그 뒤에 문극겸(文克謙)의 천거로 한림원에 보직되어 사소(詞疏)[축문]를 담당하였다. 한림원에서 고원(誥院)을 거쳐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으로 옮겼고, 1204년(신종 7) 맹성수령으로 부임하였다. 고종 초에는 비서감 우간의대부(秘書監右諫議大夫)에 올랐고,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에 재임하던 중 개경 홍도정제(紅挑井第)에서 별세하였다.

[학문과 사상]

이인로는 1199년(신종 2), 1207년(희종 3), 1213년(강종 2) 등 수차례 최충헌의 집에 초대되어 당대의 문사 이규보(李奎報) 등과 더불어 시문을 지었다. 또 최당(崔讜) 중심의 ‘기로회(耆老會)’에 참석하여 시문을 짓기도 하였다. 그리고 임춘(林椿)·오세재(吳世才) 등과 어울려 시와 술로 즐기며 ‘죽림고회(竹林高會)’를 이루어 활동하였고 시문(詩文)뿐만 아니라 글씨에도 능하였다. 특히 초서와 예서를 잘 썼다고 전하며, 한시의 시론과 그에 부합된 시 창작에 특출한 재능을 보였다. 이규보의 신의론(新意論)에 대하여 용사론(用事論)을 주창하였다.

[저술 및 작품]

『은대집(銀臺集)』에 부(賦) 5수, 고율시(古律詩) 1,500여 수가 실려 있었으며, 기로회에서 어울리던 문인들이 지은 시를 모아 놓은 『쌍명재집(雙明齋集)』에도 그의 시가 다수 들어 있었다고 하나 모두 소실되어 내용을 알 수 없다. 다만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 『동문선(東文選)』, 『대동시선(大東詩選)』, 『파한집(破閑集)』, 『보한집(補閑集)』 등에 모두 114수가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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