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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441
한자 卞宗仁
영어음역 Byeon Jongin
이칭/별칭 공장(恭莊),자원(子元)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남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경기도 부천시
성별
생년 1433년연표보기
몰년 1500년 3월 13일연표보기
본관 밀양(密陽)
대표관직 지중추부사

[정의]

조선 전기 부평도호부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자원(子元). 밀양변씨 시조 변고적(卞高迪)의 14세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변중량(卞仲良)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지풍주사를 지낸 변길상(卞吉祥)이며, 할아버지는 판사헌감사를 지낸 변을명(卞乙明)이다. 아버지는 우군사정을 지낸 변예생(卞禮生)이다. 산음현감 안진손(安震孫)의 딸 이천안씨(利川安氏)와의 사이에 변강지(卞綱之)·변기지(卞紀之)·변유지(卞維之) 3남을 두었다.

[활동사항]

변종인(卞宗仁)[1433~1500]은 1460년(세조 6)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이를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당상관이 되었다. 1473년(성종 4) 오랑캐가 북변을 침범하자 조전장(助戰將)으로 공을 세워 가선대부에 오르고, 그 공으로 1478년(성종 9) 온성도호부사(穩城都護府使)가 되었다. 이후 공조참판을 거쳐 전라도병마절도사, 영안북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영안북도병마절도사로 재직 중이던 1486년(성종 17), 오랑캐의 침입을 방어하지 못하고 태만했다는 이유로 장형에 처해져 변방으로 충군(充軍)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고, 동지중추부사가 되어 진향사(進香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1496년(연산군 2) 평안도병마절도사에 이어 경상우도수군절도사를 역임하면서 전후 12회에 걸쳐 변방을 지키는 임무를 맡아 국방을 튼튼히 하는 데 공헌하였다. 1498년(연산군 4) 65세의 고령임을 들어 수군절도사직을 사임하였으나, 1500년(연산군 6) 다시 공조판서에 임명되었다가 그 해 3월 13일 지중추부사로 재직하다 사망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 63-7번지에 있다. 부인 이천안씨 묘와 나란히 조성되었으며, 하엽형(荷葉形)의 묘비와 상석(床石)·장명등(長明燈)·문인석(文人石) 등의 석물이 있다. 묘비에는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이라는 비문이 음각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공장(恭莊)이다. 묘소 아래쪽에 1986년 4월 29일 부천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된 변종인 신도비가 위치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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