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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452
한자 李純信
영어음역 Yi Sunsin
이칭/별칭 입부(立夫),무의(武毅)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남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성별
생년 1554년연표보기
몰년 1611년연표보기
본관 전주(全州)

[정의]

조선 후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입부(立夫). 종실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이진(李眞)이다.

[활동사항]

이순신(李純信)[1554~1611]은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한 뒤 온성판관·의주판관 등을 거쳐 일시 귀가하였다가 혜산진첨절제사(惠山鎭僉節制使)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방답진첨절제사(防踏鎭僉節制使)로서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막하에서 중위장(中衛將)으로 옥포 해전에 참가하여 전공을 세운 뒤 전부장(前部將)으로서 항상 선봉이 되어 당항포(唐項浦)·한산(閑山)·부산포 등의 해전에서 적을 크게 무찔렀다.

그 뒤 충청도수군절도사를 거쳐 고령진첨사(高嶺鎭僉使)로 좌천되어 1년간 있다가 유도방위대장(留都防衛大將)·전주부윤·전라도병마절도사 등을 지냈다. 1598년(선조 31) 경상우도수군절도사로서 노량 해전에 참전하여 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총환에 맞아 전사하자 조선 수군을 지휘하여 개선하였다.

이듬해 포도대장으로서 무고한 사람을 장살하여 파직되었다가, 1600년(선조 33) 충청도수군절도사에 이어 이듬해 황해도병마절도사로 있을 때 재물을 탐냈다 하여 파직된 뒤 다시 수원부사로 임용되었으나 또 파직되었다. 1602년(선조 35)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으나 또다시 파직되는 등 여러 차례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 1604년(선조 37) 첨지중추부사가 되었고, 1606년 다시 수원부사가 되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산26-7번지에 있다. 이곳은 행정구역 개편 이전 구로구에 속한 곳이었다.

[상훈과 추모]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책록되었고 완산군(完山君)에 봉해졌다가, 1607년(선조 40) 완천군(完川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 인조 때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무의(武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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