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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479
한자 李兆年
영어음역 Yi Jonyeon
이칭/별칭 원로(元老),매운당(梅雲堂),백화헌(百花軒),문열(文烈)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상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269년연표보기
몰년 1343년연표보기
본관 성주(星州)
대표관직 정당문학예문대제학|안남서기

[정의]

고려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원로(元老), 호는 매운당(梅雲堂)·백화헌(百花軒). 아버지는 경산부(京山府) 이속(吏屬)인 이장경(李長庚)이다. 장인은 정윤의이며, 경산부에 부임해 일하는 그의 사람됨을 보고 사위로 삼았다고 한다.

[활동사항]

이조년(李兆年)[1269~1343]은 충렬왕·충선왕·충숙왕·충혜왕 4대에 걸쳐 왕을 보필한 문신이다. 1294년(충렬왕 20) 향공 진사로 급제한 후 지금의 구로 지역을 통괄한 안남도호부의 서기(書記)를 지냈다. 이후 예빈내급사(禮賓內給事)를 거쳐 비서랑(秘書郞)이 되었다. 1306년(충렬왕 32) 왕을 따라 원나라에 들어갔다. 왕유소(王惟紹)·송방영(宋邦英)의 이간으로 충렬왕·충선왕 부자간 다툼이 치열하였는데 이조년은 진퇴(進退)를 삼가하고 왕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나 억울하게 연루되어 유배를 당하였다.

유배 후 13년간은 고향에서 은거하였다. 충숙왕이 원나라에 억류되어 있을 때 심왕(瀋王) 고(暠)가 왕위를 넘보자 발분(發憤)하여 홀로 원나라에 가 왕의 정직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기도 하였다. 충숙왕이 환국한 후 감찰장령·군부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충혜왕이 원나라에서 숙위(宿衛)하면서 방탕하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 경계의 말을 간곡히 올리자 왕이 담을 뛰어넘어 달아났다고 한다. 충혜왕이 왕위에 오른 뒤 정당문학 예문대제학에 임명하였다. 충혜왕의 방탕을 보고 충정으로 간하였으나 듣지 않자 고향에서 은거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시문에 뛰어났으며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아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못 드러 하노라’라는 유명한 시조를 남겼다. 오늘날까지 자주 애송되는 것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의 심정을 자연을 통해 표현한 절구(絶句)라는 평가를 받는다.

[상훈과 추모]

충혜왕이 왕위에 오른 뒤 성산군(星山君)에 봉하였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9.22 [가계] 수정 <변경 전> 본관은 경산(京山) <변경 후> 본관은 성주(星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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