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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527
한자 韓孝友
영어음역 Han Hyou
이칭/별칭 희숙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남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531년연표보기
몰년 미상
본관 청주(淸州)
대표관직 봉상시첨정|부평부사

[정의]

조선 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희중(希仲). 한숙(韓俶)의 증손으로, 통례 한원(韓垣)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이성수(尼城守) 이존관(李存官)의 딸이다.

[활동사항]

한효우(韓孝友)[1531~?]는 1555년(명종 10) 생원·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1558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62년 중종의 능을 이전할 당시 재궁시위집사로 임명되었고, 다음해 사서(司書)를 지냈다. 1564년에는 지평(持平), 다음해 헌납(獻納), 1566년 병조정랑(兵曹正郞)에 임명되었다.

그 뒤에도 지평·병조정랑·장령(掌令)·봉상시첨정(奉常寺僉正)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명종실록』 편찬시에는 직강(直講)으로 춘추관에 관여하였다. 1573년(선조 6) 장령으로 임명되었을 때에는 대간의 체모를 생각하지 않고 출사를 청탁하였다는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578년(선조 11) 7월 7일 지금의 구로 지역을 통괄하는 부평부사(富平府使)로 부임하였고, 1579년 10월 남솔(濫率)[수령이 가속을 제한 이상으로 임지에 데리고 가는 것]하고 고을을 다스리지 않은 일로 탄핵받아 교체되었다. 1582년 그가 사예(司藝)로 있을 때 명나라의 황태자가 탄생하자 조서를 반포하기 위하여 사신이 왔다. 사신들이 성균관에서 문묘를 참배하고 존경각(尊經閣)에 들어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보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선조가 진노하여 『국조오례의』를 명나라의 사신에게 보게 하였던 사성 이하는 모두 옥에 가두게 하였는데, 한효우도 책색관(册色官)으로 하옥되어 국문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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