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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잠 묘에 얽힌 설화」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1561
한자 柳潛-說話
영어음역 Yujam Myoe Eokhin Silhwa
영어의미역 Tale of Yu Jam's tomb
이칭/별칭 유잠 묘에 얽힌 설화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경기도 시흥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사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인물담|풍수담
주요 등장인물 유잠|여종|대사
관련지명 시흥시 능곡동|금강산 유점사
모티프 유형 약자에 대한 박해|파명당으로 응징

[정의]

과거 구로구의 일부가 속해있던 경기도 시흥시의 능곡동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유잠묘에 얽힌 풍수담이자 아들 유자신에 관한 인물담.

[개설]

「유잠 묘에 얽힌 설화」유잠(柳潛)[1509~1576]의 묘에 얽힌 풍수담이자 아들 유자신에 관한 인물담이다. 이를 통해 당대 하층민의 세계관과 풍수에 대한 보편적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요컨대 「유잠 묘에 얽힌 설화」는 명당자리에 손을 잘못 대면 파명당(破明堂)이 될 수 있다는 풍수지리의 한 예이지만 파명당의 원인이 힘없는 계집종에게 가혹한 형벌을 가한 자손의 부덕(不德)에 있음을 강하게 암시함으로써 권력층의 부당한 처사에 저항하고자 하는 하층민들의 의식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다.

[채록/수집상황]

시흥문화원 홈페이지에는 시흥시 능곡동 주민 어르신들의 구전으로 전해 오는 설화를 증언을 통하여 녹취 기록하여 정리한 「유잠 묘에 얽힌 설화」가 실려 있다.

[내용]

유차달의 19대 손인 유잠은 삼사의 관직을 거쳐 예조판서와 공조판서를 지내고 6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에 선조가 국사 지관으로 하여금 묘 터를 잡도록 하여 지금의 구로구 능곡동 능골 뒷산에 자리하게 되었다. 유잠에게는 아들 형제가 있었는데 맏아들이 유자신이다. 그의 딸이 광해군의 왕비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자신은 문양부원군의 작후를 받아 권세를 누리게 된다.

유자신의 집에는 여러 노복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여종이 크게 일을 잘못 저질러 놓는 일이 발생한다. 잘못을 은폐하려 드는 여종을 괘씸히 여겨 물고를 내라 하니 나약한 계집종은 명을 거두고 만다. 종이 죽고 10년이 흐른 어느 날 유대감은 성묘 차 선영 묘에 왔다가 강원도 금강산 유점사에 있다는 도승을 만나게 된다. 도승의 내력을 듣고 그를 신뢰하게 된 유대감은 선영 묘소로 그를 안내한다. 도승은 선영 산소를 천하대지라 평하지만 선관과 옥녀의 음양교차가 불가하다고 한다.

이에 유대감은 좋은 방법을 청하고 도승의 방안대로 묘를 손보게 된다. 유대감은 역군을 모아 안산 군자봉을 깎고, 한편으로는 신도비 거북머리를 돌려놓는다. 또 한쪽으로는 도승의 방안대로 버드나무 장작을 연못 네 귀퉁이에 쌓고 불을 붙여 물을 다 퍼낸다. 그런데 바닥이 드러날 즈음 용 한 마리가 하늘을 바라보고 불끈 솟아오르다가는 명수폭포에 걸려 떨어지기를 몇 번씩이나 하더니 끝내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죽는 광경을 목도하게 되는데, 이미 도승은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이후 유자신은 인조반정으로 관작과 봉호가 추탈되었으며, 광해군 대에 권력을 누린 아들들은 처형 또는 유배되었다.

[모티프 분석]

「유잠 묘에 얽힌 설화」의 주요 모티프는 ‘약자에 대한 박해’, ‘파명당으로 응징’ 등이다. 이 설화와 같이 묘 자리 관계 전설에서는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 추구하는 가치관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명당을 획득하거나 발복하게 되는 조건에는 묘를 쓰고자 하는 인물의 자질이나 동기가 매우 중요시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명풍수가 잡은 명당일지라도 악인은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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