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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맹의 집터 설화」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1568
한자 姜希孟-說話
영어음역 Ganghuimaengui Jipteo Seolhwa
영어의미역 Tale of Gang Huimaeng's House Sit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경기도 시흥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명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인물담|수목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강희맹|안씨 부인|연산군
관련지명 염천교|진주시 상봉서동
모티프 유형 나무에 벼슬 주기

[정의]

조선 전기 문신 강희맹과 그의 아내 안씨 부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강희맹의 집터 설화」는 서울특별시 구로구가 일부 포함되어 있었던 경기도 시흥시의 하상동 산2번지[하상로 59] 묘 터에 묻혀 있는 강희맹(姜希孟)[1424~1483]과 안씨 부인에 관한 인물담이다. 또한 연산군이 이들 부부의 집 안에 있는 소나무에게 정3품의 벼슬을 하사하였다는 대부송(大夫松)에 관한 수목유래담이다.

[채록/수집상황]

시흥문화원 홈페이지에는 시흥시 하상동 주민 어르신들의 구전으로 전해 오는 이야기를 녹취하여 정리한 「강희맹의 집터 설화」가 실려 있다.

[내용]

남대문 성 밖에 아름드리 고송이 있던 곳은 바로 강희맹의 집터[서울특별시 중구 순화동 193-212번지 일대로 추정]였다. 현재 서울역에서 서대문 쪽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염천교와 남대문 사이의 중간 부분에 있었는데, 이 소나무가 벼슬을 하게 된 까닭은 이렇게 전해져 온다. 이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강희맹의 인품과 학문이 일세를 풍미했다. 그가 형조판서로 있었을 때에 판결이 공명정대하여 억울하게 옥에 갇힌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하자 나라에서 포상을 내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강희맹은 “옥사를 없게끔 밝고 좋은 정치를 하였기 때문에 옥이 비게 되었으니 모든 것이 주상 전하의 크나큰 선정(善政) 때문이옵니다.”하며 자신의 공을 왕에게 돌린 겸손한 인물이기도 했다. 겸양의 미덕을 이만큼 잘 보여준 인물도 흔치 않았던 것이다.

강희맹도 인품과 학식이 출중했지만 아내인 안씨 부인 또한 명성이 남다른 바가 있었다. 성종 시기에 임금님의 원자인 연산군이 돌도 채 되기 전에 심한 중병을 앓자 왕실에서는 법도 있는 집에 옮겨 낫게 한다는 관례에 따라 후덕한 안씨 부인의 집에 원자를 보내도록 하였다. 안씨 부인은 지극 정성으로 간병하고 잘 돌보아서 어린 연산군을 쾌유시켰으며, 이후 여러 차례 개구쟁이인 연산군의 위기를 슬기와 지혜로써 구해 주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연산군이 실 꾸러미를 삼킨 이야기이다.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에 따르면 연산군은 그 유년 시절에 몹시 장난이 심하였던 모양이다. 하루는 실 꾸러미를 목에 삼켜서 질식 직전에 이르렀는데 아무도 조처를 하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안씨 부인은 유모를 시켜 양귀 밑을 껴잡게 하고 손가락을 넣어 실 꾸러미를 꺼내 죽음 직전의 연산군을 살려내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자신의 일을 불문에 붙이라고 당부하기를 잊지 않았다. 시정들이 호되게 벌 받는 것을 걱정해서였으니 그 사려 깊음이 남달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란 연산군은 왕위에 오른 이후에 폭정을 일삼기는 했으나 그래도 안씨 부인의 인품과 덕망을 흠모하여 자주 입에 올렸다고 한다. 모정(母情)이 그립고 사무쳤던 연산군이 아니었던가. 어느 날 연산군강희맹의 집 앞을 지나다가 집 안의 노송을 보고 안씨 부인의 공덕을 기린다 하여 소나무에 정3품의 벼슬을 내려 대부송이 되게 하니 벼슬한 소나무의 내력은 이렇게 된 것이다.

기품 있고 후덕한 부인네가 터를 잡아 살고 있는 곳에는 나무마저 그 품위를 청청하게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이 소나무를 지나게 되면 말[馬]에서 내려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어야만 했다. 정3품의 대부(大夫)가 늠름하게 버티고 서 있으니 마땅히 법도에 따라 그리해야만 했던 것이다. 강희맹의 집터는 그 부인의 후덕한 인품과 이를 기리기 위해 벼슬을 내린 대부송으로 말미암아 천고에 그 명성을 떨쳤으나 지금은 사라져 흔적조차 없다. 예[古]를 잊은 채 오늘을 정신없이 살아가는 모습이 한없이 안타깝기만 하다.

[모티프 분석]

「강희맹의 집터 설화」의 주요 모티프는 ‘나무에 벼슬 주기’이다. 진나라 시황제가 처음으로 나무에 벼슬을 주었다고 한다. 비를 피해 제사를 무사히 마치게 해 준 소나무에게 대부라는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사례로는 세조가 정이품의 벼슬을 내린 속리산 법주사의 정이품송이 있다. 「강희맹의 집터 설화」 역시 ‘나무에 벼슬 주기’라는 모티프가 엿보이나 나무 자체의 공덕이라기보다는 훌륭한 모성을 실현한 인물의 공덕을 기리기 위함이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찾아볼 수 있다.

[참고문헌]
  • 시흥문화원(http://shcultu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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