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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A010101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다일

1997년에 발간된 『구로구지』에 따르면, 구로동은 조선 영조 때까지만 해도 경기도 금천현 상북면의 구로리였으나 1795년(정조 19) 금천현시흥현(始興縣)으로 개칭됨에 따라 시흥현 상북면 구로리가 되었다.

1914년 3월 1일에는 조선총독부령(朝鮮總督府令) 제111호에 따라 경기도 시흥군 북면(北面) 구로리가 되었고,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에 따라 경기도 시흥군 동면(東面) 구로리가 되었다.

그리고 1949년 8월 13일 대통령령 제159호에 따라 영등포구 구로리가 되었다가 1950년 3월 15일 서울특별시 조례 제10호인 「서울특별시 동리 명칭 중 개정의 건」에 따라 영등포구 구로동이 되었다.

1872년(고종 9)에 만들어진 「시흥현지도」에는 가리봉 서쪽에 구로리가 표시되어 있다. 구로리를 두고 강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구로리의 북쪽으로 흐르는 강에는 기탄교가 놓여 있고, 서쪽으로 흐르는 강에는 소기탄교가 놓여 있다. ‘기탄’은 지금의 안양천을 일컫는다.

[구로를 설명하는 숫자 ‘9’]

한자로 구로를 쓸 때 ‘구로’는 아홉 구(九)에 늙을 노(老)로 쓴다. 말 그대로 아홉 명의 노인을 뜻하는 것이 ‘구로동’이다. 이를 증명하듯 구로에는 예부터 두 가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모두 숫자 9와 관련된 내용들이다.

대한노인회 구로구지회장 김용덕[1935년생] 씨는 “어릴 때부터 아홉 명의 노인이 장수한 마을이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며, ‘구로’는 곧 ‘아홉 노인의 장수’를 일컫는다고 했다. 또한 숫자 9와 노인이 들어가는 것은 같지만 그들이 마을을 지켜 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고 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원래 구로 지역은 지대가 낮아서 비가 많이 오면 마을이 잠기기도 했는데, 어느 해 마을에 비가 많이 와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피난을 떠났으나 아홉 명의 노인이 끝까지 남아서 마을을 지켰다는 것이다. 김용덕 씨는, 두 이야기 중 어느 것이 맞는지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숫자 9와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구로’라는 지명을 만들어 낸 것은 분명한 듯하다고 말했다.

[구로동을 이야기해 주는 것들]

서울 서남단에 위치한 구로동은 현재 구로순복음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구로본동과 걷고싶은거리·신구로유수지생태공원이 있는 구로1동,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이 있는 구로2동, 구로디지털단지가 있는 구로3동, 남구로역이 들어선 구로4동, 구로역신도림테크노마트가 들어선 구로5동, 2호선 대림역이 위치한 구로6동 등 15개 행정동과 10개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로동에는 2010년 5월 31일 현재 총 6만 559가구에 14만 293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특히 구로3동의 경우 최첨단 디지털 단지로 변화하면서 IT 회사가 밀집하고 하루 유동 인구가 11만 명에 육박하면서 과거 굴뚝 공장의 모습은 흔적조차 없어졌다.

도시의 외관은 현대화되었지만 그러나 구로동에는 예부터 내려오는 전설은 물론이고 그 전설과 관련된 상징물들이 마을 곳곳에 유달리 많이 전해 온다. 그 중에서도 구로동 340번지 구로구청에 세워진 노인상과 지팡이 조형물, 느티나무 그림 속 아홉 개의 원이 그려진 구로구 로고, 구로거리공원의 지팡이 조형물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조형물들은 구로동 주민이라면 한 번쯤 접했을 법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는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보제공]

  • •  김용덕(남, 1935년생, 구로구 구로동 주민, 대한노인회 구로구지회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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