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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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조 시기[918~1392] 구로 지역의 역사. 고려시대에 구로 지역은 행정구역상 수주(樹州)였다. 수주는 원래 고구려의 주부토군(主夫吐郡)인데 신라 경덕왕이 장제군(長堤郡)으로 고쳤다. 후삼국시대에 궁예 세력의 지배를 받다가 곧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고려 초에 수주로 고쳤고 995년(성종 14)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이를 없앴으며, 1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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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940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통일신라 시대의 지방 통치 구역 명칭. 서울특별시 구로구와 시흥시, 광명시 일대는 이설이 있으나 『삼국지(三國志)』 한전(韓傳) 마한조(馬韓條)에 보이는 우휴모탁국(優休牟涿國)으로 비정할 수 있다. 우휴모탁국은 백제가 성장함에 따라 적어도 고이왕(古尒王)[234~286] 대에는 백제에 병합되었다. 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백제의 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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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4년 구로 지역에 설치된 조선 시대의 행정 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금천현조에 “동쪽으로 과천현(果川縣)까지 11리(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경기도읍지(京畿道邑誌)』「시흥군읍지」에는 “과천과 동쪽으로 20리 떨어져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금과현(衿果縣)은 조선시대 경기도 금천현(衿川縣)과 과천현이 합하여 이루어진 지명이다. 금천현은 오늘날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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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1413년 구로 지역에 설치된 고려시대의 지방 행정 구역. 본래 고구려 잉벌노현(仍伐奴縣)인데, 신라 경덕왕이 곡양현(穀壤縣)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금주(衿州)라고 고쳤고 성종이 단련사(團練使)를 설치하였는데, 목종이 혁파하였다. 1018년(현종 9) 수주현(樹州縣)[현 부천시 일대]에 예속되었고 명종 때 비로소 감무(監務)가 설치되었다. 『고려사(高麗史)』 권94 강감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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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로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고려를 멸망시키고 왕위에 오른 태조 이성계는 통치 조직과 지방 제도에서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였으나 조선왕조의 기틀이 어느 정도 다져지자, 태종은 1413년에 대대적인 지명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는 다분히 고려왕조의 잔재를 불식시키기 위한 정치적 의도였다. 태종은 각 도의 부관(府官)은 도호부(都護府)로 고치고 감무(監務)는 현감(縣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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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서울특별시 구로구의 역사. 한반도 중앙부에 있는 서울특별시 구로구는 1980년에 경기도 시흥군 상북면(上北面)·동면(東面), 경기도 부평군 수탄면(水呑面),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일부 지역을 편입하여 이루어졌다. 한강 유역에 자리 잡은 구로구는 기름진 평야 지대가 있을 뿐 아니라 육로·수로 교통의 요지이자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한 입지 조건을 갖추어서 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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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고구려가 구로 지역에 설치한 행정 구역. 잉벌노현(仍伐奴縣)은 삼한시대에 우휴모탁국(優休牟涿國)이 있었던 곳으로 비정되며, 삼국시대에 들어와서는 각국이 영유권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었던 곳이다. 처음에는 백제가 영유하였고, 이후에는 고구려와 신라가 차례로 점령하였다. 잉벌노라는 이름은 고구려가 한강 하류 유역을 점령한 뒤 붙여졌다. 잉벌노현은 삼국시대에 고구려가 한강 이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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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년부터 757년까지 구로 지역을 관할하던 통일신라 시대의 지방 행정 구역. 문무왕은 통일을 달성하고 당 세력을 몰아낸 후, 불과 5년 만에 세상을 떠나 전후 처리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즉위한 신문왕은 685년 통일 후 확대된 영토를 능률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유교 이념을 토대로 새로운 지배 질서를 구축해 나가면서 지방 행정 제도를 개편하였다. 즉 전국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