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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274
한자 新羅
영어음역 Shilla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오계화

[정의]

삼국시대 구로 지역을 지배 통치했던 고대 국가.

[개설]

신라는 『삼국지(三國志)』에 기록된 진한의 12개국 가운데 사로국을 모체로 성장하여, 고구려·백제와 더불어 삼국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구로 지역이 포함된 한강 유역을 두고 고구려·백제와 겨룬 끝에 553년(진흥왕 14) 완전히 장악하는 데 성공하였고, 한강 유역 점유를 교두보로 7세기경 당과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마침내 삼국을 통일하였다.

[형성]

기록에 따르면 B.C. 57년 박혁거세(朴赫居世)가 신라를 세웠다. 나정(蘿井) 옆 숲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앉아 울고 있으므로 가서 보니 어느새 말은 보이지 않고 다만 큰 알만 있었는데, 그것을 쪼개어 나온 어린아이가 박혁거세이다. 박혁거세는 나이가 10여 세에 이르자 남달리 성숙하고 뛰어났으며, 13세에는 나라를 세웠다. 재위 5년에 왕비를 맞았는데, 그녀는 알영정이란 우물에서 나온 용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 기록상 신라 초기 왕실은 박씨·석씨·김씨 집단이 왕위를 교대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신라의 모체이며 진한의 소국 가운데 하나였던 사로국의 형성은 이보다 빠를 것으로 추정된다.

[발전과 멸망]

4세기 들어 즉위한 내물왕은 왕호를 이사금(尼師今)에서 마립간(麻立干)으로 개칭하였는데, 이는 더욱 강력해진 왕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김씨 집단의 독점적 왕위 세습이 이루어졌다. 내물왕은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낙동강 동쪽의 진한 지역을 거의 차지하고 중앙 집권 국가의 기틀을 다져 나갔다.

지증왕 때는 정치 제도를 정비하고 국호를 신라로 통일하였다. 왕호를 마립간에서 왕으로 고쳤으며, 수도와 지방의 행정구역을 정비하였다. 법흥왕은 병부 설치, 상대등 설치, 율령 반포, 불교 공인, 공복 제정 등을 통해 통치 질서를 확립하였다. 이때 금관가야가 투항하였다.

6세기 진흥왕이 즉위한 뒤 신라는 삼국 간 항쟁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시작하였다. 신라는 551년(진흥왕 12) 백제와 공동 작전으로 고구려의 10군을 탈취하고, 다시 553년 백제가 차지했던 한강 하류 지역마저 점령함으로써 삼국 통일의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이때 구로 지역도 신라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한강 유역을 완전히 차지한 신라는 신주(新州)를 설치하였다가 4년 후인 557년(진흥왕 18) 신주를 폐하고 북한산주(北漢山州)를 설치하였다. 북한산주는 이후 설치하였다가 폐하기를 몇 차례 거듭하였다.

660년(무열왕 7) 신라는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668년(문무왕 8) 고구려를 무너뜨렸다. 통일 이후 신라는 지방 행정 체제를 정비하면서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편성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북한산주한산주로 확장 재편된 것으로 보인다. 경덕왕 때는 한산주한주로 고쳤는데, 지금의 구로 지역은 한주 장제군과 율진군 곡양현 관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 통일 후 전제 왕권을 확립해 갔던 신라는 8세기 후반 사회·경제적 모순이 심화되고 중앙 정계가 혼란을 거듭하여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느슨해지면서 지방 유력자들이 정치적으로 독립하는 토대가 마련됨으로써 호족이 출현하였다. 이후 후삼국의 분열기를 거쳐 935년 고려에 귀부함으로써 멸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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