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과천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297
한자 果川縣
영어음역 Gwacheon-h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윤대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1413년연표보기
폐지연도/일시 1895년연표보기

[정의]

1413년부터 1895년까지 구로 지역에 속해있던 조선 시대의 행정 구역.

[관련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과천현(果川縣)은 동쪽으로 광주(廣州)와 남쪽으로 수원부(水原府), 서쪽으로 금천(衿川)·안산(安山), 북쪽으로 노량(露梁)과 경계를 이루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시대에 들어서 1413년(태종 13) 대대적인 지명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기존의 지관(知官)과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던 주(州)를 대부분 현(縣)으로 하였는데, 이때 과주(果州)는 과천현으로 바뀌면서 종6품의 현감을 두었다. 1414년(태종 14) 금천현(衿川縣)과 합하여 금과현(衿果縣)이라 하였으나, 두어 달 만에 복구되었다. 1456년(세조 2)에도 과천현금천현이 흡수 통합되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분리되었다.

[변천]

옛 구로 지역에 포함되었던 현재의 과천(果川) 일대는 율목(栗木), 동사힐(冬斯肹), 율진(栗津), 과주 등으로 불렸다. 율목과 동사힐은 삼국시대 고구려 지명이었고, 율진은 통일신라시대, 과주는 고려시대의 지명이다. 과천현은 1895년(고종 23) 갑오개혁 당시 지방 관제 개정에 의하여 과천군이 되었고 군내면(郡內面), 동면(東面), 남면(南面), 상서면(上西面), 하서면(下西面), 상북면(上北面), 하북면(下北面) 등 7개 면을 관할하였다. 당시의 과천군은 현재의 과천시와 군포시, 안양시, 서울특별시 구로구, 강남구, 동작구의 일부 지역을 포함하였다.

1914년에는 시흥군(始興郡)에 편입되었고, 영역이 축소되면서 군이 아닌 면이 되었다. 이때 과천면은 관문리(官門里), 문원리(文原里), 갈현리(葛峴里), 하리(下里), 막계리(莫溪里), 주암리(注岩里) 등 6개 리로 구성되었다. 해방 이후 도시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1986년에 시흥군 과천면에서 과천시로 승격하여 서울특별시의 위성 도시가 되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