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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304
한자 日帝强占期
영어음역 Iljegangjeomgi
영어의미역 Japan’s Colonial Rule of Korea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배성수

[정의]

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시기의 서울특별시 구로구의 역사.

[개설]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강점기는 1910년대의 무단 통치기와 1920년대의 문화 정치기로 불리는 민족 분열 통치기, 그리고 1930년대 이후부터 1945년 일제 패망까지의 파쇼 통치기 등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행정구역 개편]

구로구의 중심 동인 구로동은 현재 구로 본동구로 1동~구로 5동까지 6개의 행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영조 시대까지는 경기도 금천현 상북면 구로리였으나, 1795년 금천현시흥현으로 개명되었다.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1895년 5월 26일 반포된 전문 6조의 칙령 제98호에 따라 시흥현시흥군으로 바뀌고, 안산·과천군과 함께 인천부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朝鮮總督府令)」 제111호에 의해 전국의 지방 행정 제도가 정비되어 경기도 각 면의 명칭과 구역을 새로 정함에 따라, 이 지역은 경기도 시흥군 북면 구로리가 되었다. 이어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에 의거해 경기도 시흥군의 영등포읍과 북면·동면 지역의 일부가 경성부에 편입될 때 구로리 지역은 여기에서 제외되어 경기도 시흥군 동면 구로리가 되었다.

[경제 활동]

일제강점기 초기 구로구의 경제 활동은 농업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였다. 1912년 영등포 지역에 일본인이 경영하는 조선피혁주식회사 공장이 설립되어 피혁(皮革)과 양화(洋靴)를 생산하게 되면서 영등포와 구로 지역은 서울 인구의 교외 거주지로서뿐만 아니라 요업(窯業)·피혁·기계 등의 근대 공장이 설립되어 서울의 위성 도시로 성장해 나갔다. 1930년 중엽에는 영등포의 공장 지대가 확장되어 구로동에도 근대 산업 공장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36년에 1,913대에 지나지 않았던 시흥군의 전등 수는 1939년에 4,251대로 증가하였다.

1930년대 후반기에 접어들자 일본 재벌들이 앞 다투어 경인 지방에 공장을 설립하였다. 일본 재벌의 진출을 조장하는 뜻에서 조선총독부는 지가(地價)의 등귀(騰貴)를 막기 위해 구로 지구·시흥 지구 등에 공장 용지 조성 지구를 설정하였다. 더구나 구로 지구는 서울에 가깝고 공업용수가 풍부했기 때문에 기계 공업·제련 공업·염색 공업 등 중화학 계열의 공장들이 주로 설립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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