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3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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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富平都護府官衙 |
영어음역 | Bupyeongdohobu Guan-a |
영어의미역 | Bupyeong Magistrate’s Offic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안홍민 |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를 관할하였던 조선시대 부평도호부의 청사.
[개설]
부평도호부관아는 조선시대 구로구를 관할하였던 행정 관청이다.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으로 지방 행정 제도를 개혁하였을 때, 오류리·개봉리·고척리·천왕리·항리·온수리 및 궁리 지역 등 7개 리가 경기도 부평군 수탄면에 속하였다.
[위치]
부평인터체인지에서 계양로 방면으로 직진해서 인천지하철 경인교대입구역을 지나면 오른편에 부평초등학교가 있는데, 부평도호부관아는 부평초등학교 내에 위치한다. 경인교대입구역이나 계산역에서 부평초등학교까지 도보로 이동 가능하며, 거리는 양 방면 모두 300m 내외로 가깝다.
[변천]
부평도호부관아는 1413년(태종 13)에 부평부가 부평도호부로 승격되면서 건립된 것으로 여겨지며, 건립 착수 후 5년 뒤인 1418년(태종 18)에 완공된 것으로 보인다. 『부평부읍지(富平府邑誌)』에 의하면 중심 업무를 보던 동헌, 관리나 외국 사신이 묵던 숙박 시설인 객사, 죄를 다스리던 포도청 및 내아와 서헌 등 총 23동으로 이루어진 웅장한 규모의 건물이었다고 한다.
1677년(숙종 3)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근래 들어 부평초등학교를 세우면서 대부분의 건물은 소실되었고, 현재 남은 건축물은 1968년에 원래의 자리에서 이전한 것이다.
[형태]
부평도호부관아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건축 양식은 합각지붕을 한 굴도리집으로 공포(栱包)는 없다. 현재 남아 있는 1개 동의 건물은 원래 ‘ㄱ’자 형태였으나, 지금의 위치로 옮겨 오면서 ‘一’자형 건축물로 바뀌었으며, 이 또한 동헌인지 내아인지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현황]
2010년 기준 부평도호부관아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인천광역시 교육청이다. 1982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 부평도호부관아는 1개 동만 남아 있는 상태이며, 건물 주변에 철제 울타리를 쳐 놓아 외부와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건물 앞에는 정조가 부사를 인견하며 활을 쏘고 손을 씻었다는 ‘욕은지(浴恩池)’[인천문화재자료 제1호]가 있다. 본래 문화재 명칭은 '부평도호부청사'였으나 2019년 10월 '부평도호부관아'로 변경되었다.
[의의와 평가]
부평도호부관아 건립 당시 부평도호부는 현 경인 지역의 중심지로 현재의 구로구 일대도 그 관하에 포함되었었다. 부평도호부관아 건물뿐 아니라 그 앞에 있는 욕은지도 조선시대의 건축 기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