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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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州河氏 |
영어음역 | Jinjuhassi |
영어의미역 | Jinjuha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집필자 | 김정진 |
세거지 |
서울특별시 구로구 오류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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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서울특별시 구로구 오류2동|천왕동 |
입향시기/연도 | 1700년경![]() |
성씨시조 | 하진(河珍) |
입향시조 | 하백연 |
하진을 시조로 하고, 하백연을 입향조로 하는 서울특별시 구로구 세거 성씨.
진주하씨의 시조는 고려 정종 때 사직(司直)을 지낸 하진(河珍)이다. 그런데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이 1451년(문종 1) 처음으로 족보를 내면서 그 서문에 “세계가 전함이 없고 『고려사(高麗史)』에 홀로 하시랑 공진이 있어 듣기에 기쁘나 동원(同源)이면서 분파가 확실치 않다.”고 한 것과 같이 진주하씨의 세계(世系)는 계통이 뚜렷하지 않다. 현재 진주하씨는 3파로 갈라져 있는데, 하공진을 시조로 하는 시랑공파(侍郞公派), 고려 정종 때 사직(司直)을 지낸 하진(河珍)을 시조로 하는 사직공파(司直公派), 고려 때 주부(主簿)를 지낸 하성(河成)을 시조로 하는 단계공파(丹溪公派)가 그것이다.
본관을 진주로 한 연유는 시조인 하공진이 진주 태생이며, 11세손인 하륜(河崙)[1347~1416]이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에 추봉되었고, 하진[사직공파]의 9세손인 하즙이 진천부원군(晉川府院君)에, 10세손인 하윤원이 진산부원군에 봉해졌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시조 하공진은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막고자 외교를 펴다가 돌아오지 못하였고, 하륜은 영의정으로 태종을 도와 조선의 문물을 정비하였으며, 경재 하연(河演)[1376~1453]은 3대의 임금을 섬기며 영의정으로 문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각재 하항(河沆)[1538~1590]과 영무성 하응도(河應圖)[1540~1610]는 남명 조식의 제자로 학문의 성취가 있었고, 송정 하수일(河受一)[1553~1612]은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정랑을 역임하였으며, 겸재 하홍도는 정묘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입향조 하백연은 세종(世宗)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의 5세손이며,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인물로서 1550년(명종 5)경에 이 마을을 개척하였다. 충의위로 무관직을 지낸 하기철도 이 마을에 정착한 후 관계로 진출하였다. 이때부터 진주하씨는 천왕동에 정착하여 지금까지 16대째를 계속하여 이어 오고 있다
진주하씨 세거지 천왕동은 영등포교도소가 이곳으로 이전할 예정이라 전주민이 오류동과 인근 지역으로 이거하였다. 진주하씨 후손들 역시 인근 지역에 5세대 2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