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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433
한자 李瑋
영어음역 Yi Wi
이칭/별칭 직청(直淸),장숙(莊肅)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남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049년연표보기
몰년 1133년연표보기
본관 수주(樹州)

[정의]

고려 전기 수주 출신 문신.

[가계]

본관은 수주(樹州). 자는 직청(直淸). 고려 개국 공신 이희목(李希穆)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정공(李靖恭)이다. 동생으로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낸 이숙(李璹)이 있으며, 인종의 비(妃)이자 임원후(任元厚)의 딸인 공예태후(恭睿太后)의 외할아버지이다.

[활동사항]

이위(李瑋)[1049~1133]는 문과에 급제하고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을 거쳐 1087년(선종 4) 상서병부원외랑(尙書兵部員外郞)으로 경상도에 파견되었으나, 백성을 구제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파면되었다. 이어 황주목부사가 되어서는 청렴하고 부지런하게 백성을 보살펴 임기가 만료되기 전인 1096년(숙종 1) 상서우사원외랑(尙書右司員外郞)에 발탁되었다.

이듬해 전내(典內)를 거쳐 1100년(숙종 5) 급사중(給事中)이 되었고, 1104년(숙종 9) 직문하(直門下)로서 서북면행영병마사(西北面行營兵馬使)에 임명되어 임간(林幹)과 함께 여진 정벌에 나섰다. 이어 비서감 지상서이부사(祕書監知尙書吏部事), 1107년(예종 2) 검교사공(檢校司空)에 오르고 이듬해 예부상서로서 지공거(知貢擧)를 역임하였다. 1109년 추밀원사(樞密院使)로서 평장사(平章事) 최홍사(崔弘嗣), 김경용(金景庸), 참지정사 임의(任懿)와 함께 윤관(尹瓘)·오연총(吳延寵)·임언(林彦)의 패전을 극론하였으며 이 해에 참지정사가 되었다.

이듬해 형부상서 중서시랑 판호부사 겸 서경유수사(刑部尙書中書侍郞判戶部事兼西京留守使), 1113년(예종 8) 수태위상주국(守太尉上柱國)에 올랐고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의 호를 받았다. 1116년(예종 11) 서경 행차 때 판행종사(判行從事)가 되어 수행하였고, 이어 수태보 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守太保門下侍中判尙書吏部事)가 되었다. 이듬해 태부(太傅)가 되었다. 1126년(인종 4) 외손녀인 임씨(任氏)가 태몽과 같이 인종의 비로 책봉되어 의종·명종·신종 등을 낳았는데 바로 그가 공예태후이다. 1127년(인종 5) 중서령에 올랐다가, 그 뒤 문하시중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상훈과 추모]

1117년(예종 12) 지금의 구로 지역을 포함한 지명이었던 계양군개국백(桂陽郡開國伯), 광국공신(匡國功臣)이 되었다. 1122년 인종이 즉위하여 광국공신계양공(匡國功臣桂陽公)에 봉해졌고, 1127년(인종 5) 진정공신(鎭定功臣)의 호가 내려졌다. 시호는 장숙(莊肅)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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