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434
한자 趙胖
영어음역 Jo Ban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남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341년연표보기
몰년 1401년연표보기
본관 배천[白川]
대표관직 참찬문하부사

[정의]

조선 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개설]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부평 석곶면에 가정이라는 별업[별장]을 가지고 있었다. 세종 때 화공을 보내 그가 살았던 처소를 그리게 하였더니 당대의 명사들이 나아가 시를 지어 읊은 것이 많았다.

[가계]

본관은 배천[白川]. 할아버지는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 은천군 조하(趙何)이다. 아버지는 호군 조세경(趙世卿)이며, 어머니는 찬성사 양백연(楊伯淵)의 딸이다.

[활동사항]

조반(趙胖)[1341~1401]은 12세에 아버지를 따라 북경(北京)에 가서 매부인 단평장(段平章)의 집에 있으면서 한문과 몽고어를 배워 원나라 승상 탈탈(脫脫)의 인정을 받아 중서성역사(中書省譯史)가 되었다. 1368년(공민왕 17) 아버지가 늙어 환국하였다. 1382년(우왕 8) 판도판서(版圖判書)로서 하정사겸주청사(賀正使兼奏請使)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시호와 승습을 청하였고, 돌아와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었다.

1385년에도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가서 시호와 승습을 청하고 돌아왔다. 이때 조정에서 전횡을 일삼던 염흥방(廉興邦)의 종 이광(李光)이 자기 땅을 빼앗자 이광을 죽였다. 이에 염흥방에 의하여 투옥되었으나, 이 일은 정치적인 사건으로 발전하여 최영(崔瑩)과 사전 협의를 한 우왕의 명으로 조반은 석방되고 당시 전횡을 일삼던 임견미(林堅味)·염흥방 일당이 처형되는 무진피화(戊辰被禍)[정월지주(正月之誅)라고도 함]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 뒤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개성윤(開城尹)이 되었다. 1389년(공양왕 1) 순안군(順安君) 왕방(王昉)과 함께 명나라에 가서 왕의 즉위를 알렸으며, 이때 윤이(尹彝)·이초(李初) 등의 본국에 대한 무고 사실을 명 황제에게 잘 설명하여 의심을 풀게 하였다. 다음해 돌아와 윤이이초의 사건을 보고하여 이색(李穡) 등 수십 명이 피해를 당하는 옥사를 일으켰다.

1391년 공전(公田)을 함부로 빼앗아 중서성과 부관의 탄핵을 받고 관직이 삭탈되어 죽림(竹林)으로 귀양갔으나 곧 풀려나, 1392년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가 되었다. 백관(百官)의 장문(狀文)을 가지고 조선 개국의 사실을 알리러 명나라에 갔다가 세 달 만에 돌아왔다.

1394년(태조 3) 6월과 11월 이방원(李芳遠)과 함께 명나라에다녀왔다. 1395년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에 제수되었다가, 첨의문하부사(僉議門下府事)를 거쳐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에 이르렀다. 1396년과 1397년에도 하정사로서 명나라에 갔으나 등주(登州)에서 제왕(齊王)의 방해로 다음해에 돌아왔다.

[상훈과 추모]

조선 개국 후 개국공신 2등에 책록되고 복흥군(復興君)에 봉하여졌다. 시호는 숙위(肅魏)이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