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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462
한자 李弘淵
영어음역 Yi Hong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상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604년연표보기
몰년 1683년연표보기
본관 한산(韓山)
대표관직 대사간|부평부사

[정의]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한산(韓山). 증조할아버지는 이소(李沼)이고, 할아버지는 이준(李浚)이며, 아버지는 대사간을 지낸 이덕수(李德洙)이다. 어머니는 조씨이다.

[활동사항]

이홍연(李弘淵)[1604~1683]은 조희일(趙希逸)정홍명(鄭弘溟), 기옹(畸翁)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1624년(인조 2)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36년(인조 14)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세마(洗馬)를 거쳐 시직(侍直)으로 병자호란을 만나 왕세자를 모시고 남한산성에 호종하였다. 이듬해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간원사간이 되어 조의(朝議)를 뿌리치고 조석윤(趙錫胤)과 함께 김자점(金自點)을 탄핵하여 간관으로 명성을 떨쳤다.

1649년 효종이 즉위하자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1654년(효종 5) 지금의 구로 지역을 포괄하던 부평부사로 재직하였을 때 백성의 송사를 잘못하여 유배당하였다가 풀려나 승정원좌승지와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658년(효종 9) 사간원대사간과 예조·병조·형조의 참의 등을 역임하였으며, 회양부사(淮陽府使)와 서천군수(舒川郡守)를 지냈다.

1670년(현종 11) 충청도관찰사에 이어 사간원대사간과 호조참의, 승정원의 승지를 거쳐 1673년(현종 14) 형조참판에 오르고 이어 사간원대사간과 경기도관찰사를 지냈다. 1675년(숙종 1) 사간원대사간으로 특진관(特進官)을 겸직한 후 승정원도승지를 역임하였다. 같은 해에 서인(西人)이 실각하고 김수항(金壽恒)을 변호하다가 관직이 삭탈되었으나, 이듬해 다시 서용되었다.

1680년(숙종 6) 의금부당상관으로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의 옥사를 다스려 허목(許穆) 등을 숙청하였다. 다시 사간원대사간을 거쳐 공조판서를 지내고 의정부좌참찬으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숙종실록(肅宗實錄)』 숙종 9년조 기사에 이홍연의 졸기(卒記)가 실렸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좌참찬(左參贊) 이홍연이 졸(卒)하였다. 이홍연은 세벌(世閥)에서 출생하였는데 사람됨이 매우 공평무사(公平無私)하지 못하였다. 젊어서 동궁(東宮)의 관원(官員)이 되었을 적에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심양(瀋陽)에 인질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는 병을 핑계대고 수가(隨駕)하지 아니하였다.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이 때문에 청직(淸職)의 선발에는 뽑히지 못하였다가 후에 사간원대사간과 방백(方伯)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이해에 나이 80세가 찼으므로 숭정대부(崇政大夫)의 관계(官階)에 초배(超拜)되었었는데, 이때에 와서 졸(卒)하였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북쪽으로 약 12㎞ 떨어진 화승(花升)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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