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인선왕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463
한자 仁宣王后
영어음역 Inseonwanghu
이칭/별칭 풍안부부인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상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왕비
출신지 서울특별시 구로구
성별
생년 1618년연표보기
몰년 1674년연표보기
본관 덕수(德水)

[정의]

조선 후기 구로 출신의 효종 비.

[가계]

본관은 덕수(德水). 선조는 장순룡(張順龍)으로 원나라 선무장군(宣武將軍) 진변총관(鎭邊摠管)으로서 공주를 따라 고려에 들어와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냈으며 덕수현을 채지(采地)로 받아 관향으로 삼았다. 고조는 장임중(張任重)으로 장례원사의(掌隷院司議)였고, 증조는 장일(張逸)로 목천현감이었으며, 할아버지는 장운익(張雲翼)으로 형조판서를 지냈다.

아버지는 장유(張維)로 우의정 신풍부원군 문충공이며, 어머니는 영가부부인(永嘉府夫人) 김씨(金氏)로 충신 우의정 문충공 김상용(金尙容)의 딸이다. 효종과의 사이에서 1남 5녀를 두었는데, 1남은 후에 현종이 되었으며, 5녀는 숙안(淑安)·숙명(淑明)·숙휘(淑徽)·숙정(淑靜)·숙경(淑敬) 공주이다.

[활동사항]

1630년(인조 8) 봉림대군(鳳林大君)의 부인으로 간택되었다. 병자호란 뒤 소현세자(昭顯世子)봉림대군이 심양(瀋陽)에 인질로 갈 때 대군을 호종하여 8년간 머물렀다. 처음에 풍안부부인(豊安府夫人)으로 책봉되었다가, 1645년 봉림대군이 세자가 되자 세자빈으로 되었으며, 1649년 효종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다.

1662년(현종 2) 효숙(孝肅)의 존호를 받았다.

많은 한글 편지를 남겼으며 특히 5명의 공주에게 보낸 궁체로 씌어진 언간(諺簡)이 유명하다. 영의정 허적(許積) 등이 인선(仁宣)이란 시호를 올렸는데, 사랑을 베풀고 의로운 일을 행하는 것을 인(仁)이라 하고, 성스럽고 착함이 두루 소문난 것을 선(宣)이라 하였다. 휘호는 경렬명헌(敬烈明獻)이다.

[저술 및 작품]

인선왕후가 쓴 한글 편지가 많이 전하여진다. 편지의 내용은 일상생활의 안부가 대부분이나 배경이 궁중과 사대부가이므로 궁중 풍속, 정치적 사건 등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중국 소설 언해(諺解)를 다독한 흔적이 있어 중국 소설의 언해 시기, 부녀자와 국문 소설과의 관계에 있어서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인선왕후의 필적을 살펴보면 효빈체(效嚬體)에서 궁체(宮體)로 넘어가는 과정에 속하는 것이나 궁체에 가까운 위치에 있어, 조선 중기 여인들의 언간(諺簡) 및 황후의 언간으로서 학문적 가치가 높다.

[묘소]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산 83-1번지에 있는 영릉에 모셔졌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