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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응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514
한자 鄭應麟
영어음역 Jeong Eungrin
이칭/별칭 인지(麟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남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본관 청주(淸州)
대표관직 대사간|부평부사

[정의]

조선 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인지(麟之). 증조할아버지는 정효충(鄭孝忠)이며, 아버지는 정윤증(鄭胤曾), 어머니는 이창동(李昌東)의 딸이다.

[활동사항]

정응린(鄭應麟)은 1510년(중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가 되었다. 그 뒤 저작·박사를 거쳐 외직으로 금산군수를 지내고 다시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과 장령(掌令)을 지냈다. 또한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을 지내고 1525년 응교(應敎)를 거쳐 직제학(直提學)이 되었으며, 이어서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지내고 대사간(大司諫)으로 승진하였다.

1527년(중종 22) 10월 18일 지금의 구로 지역을 통괄한 부평부사(富平府使)로 부임하였고, 1528년 1월 18일 병으로 사직서를 제출하여 교체되었다. 내직에 있을 때에는 성실과 근면으로 책무를 완수하였고, 외직인 목민관이 되어서는 백성의 질고를 보살피며 부세(賦稅)를 경감하는 등의 치적을 쌓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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