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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519
한자 張玉
영어음역 Jang Ok
이칭/별칭 자강,유정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남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493년연표보기
몰년 미상
본관 덕수(德水)
대표관직 판교|부평부사

[정의]

조선 중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강(子剛), 호는 유정(柳亭). 집의 장충보(張忠輔)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장옥(張玉)[1493~?]은 1515년(중종 10)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이듬해 정언(正言)에 특진되고, 부수찬(副修撰)·천문이습관(天文肄習官) 등을 거쳐 1519년 응교(應敎)가 되었다가 1521년의 기묘사화의 여파인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 1526년 유배지에서 풀려나와 문과중시에서 을과로 급제, 사가독서(賜暇讀書)하고 1529년 병조정랑, 그 이듬해 군자감부정 등을 역임하였다.

1532년 김안로(金安老)의 일당에게 몰려 유배되었다가 1537년 김안로문정왕후(文定王后)의 폐위를 도모하다가 유배되어 사사(賜死)되자 풀려나왔다. 1543년(중종 38) 8월 3일 지금의 구로 지역을 통괄하는 부평부사(富平府使)로 부임하였고, 1545년 6월 병으로 사직서를 제출하여 교체되었다.

1547년(명종 2) 봉상시정(奉常寺正)을 거쳐 1550년 예빈시정(禮賓寺正)으로 춘추관편수관(春秋館編修官)이 되어『중종실록(中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고 판교(判校)에 올랐다. 『성리대전(性理大全)』에 정통하여 시강관(侍講官) 시절에는 진강(進講)에 선발되었다. 기묘명현의 천거로 한때 명망이 있었으나, 심정(沈貞)의 소요정(逍遙亭) 서문을 지으며 미사여구를 남발하여 비난을 듣기도 하였다.

[저술 및 작품]

『성리대전(性理大全)』에 정통하였으며 저서로 『유정유고(柳亭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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