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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520
한자 陳復昌
영어음역 Jin Bokchang
이칭/별칭 수초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남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미상
몰년 1563년연표보기
본관 여양(驪陽)
대표관직 공조참판|부평부사

[정의]

조선 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여양(驪陽). 자는 수초(遂初). 경기도 풍덕(風德) 출신으로, 아버지는 현감 진의손(陳義孫)이다.

[활동사항]

진복창(陳復昌)[?~1563]은 1535년(중종 30) 생원으로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그 뒤 정자(正字)·전적(典籍)·장령(掌令)을 거쳐 부제학(副提學) 등을 지냈다. 척신 세도가였던 소윤 윤원형(尹元衡)의 심복이 되어 1545년 을사사화 때 대윤에 속한 사림의 숙청에 크게 활약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해를 입자 사관(史官)들로부터 ‘독사(毒蛇)’로 기록되었다. 1545년(인종 1) 7월 24일 지금의 구로 지역을 통괄하는 부평부사(富平府使)로 부임하였고, 같은 해 12월 장령으로 제배되어 교체되었다.

1550년에는 자기를 추천한 구수담(具壽聃)까지 역적으로 몰아 사사(賜死)하게 하는 등 윤원형이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앞장서 옥사를 일으켜 제거하자 ‘극적(極賊)’이라는 혹평을 들었다. 대사헌을 거쳐 1560년 공조참판에 올랐으나 윤원형으로부터 간교, 음험한 인물로 배척, 파직되어 삼수(三水)에 유배되었다. 1563년 죄가 가중,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배소에서 죽었다. 교활한 성품과 어머니의 행실까지 방종하여 더욱 지탄을 받았다.

[저술 및 작품]

구수담의 문인으로,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다. 저서로 『역대가(歷代歌)』, 『만고가(萬古歌)』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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