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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548
한자 吳䎙
영어음역 O Bin
이칭/별칭 빈우(賓羽),농재(聾齋),숙헌(肅憲)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양윤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602년연표보기
몰년 1685년연표보기
본관 해주(海州)
대표관직 지중추부사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빈우(賓羽), 호는 농재(聾齋). 아버지는 종친부전부령(宗親府典簿令) 오사겸(吳士謙)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한성서윤 이시중(李時中)의 딸이다.

[활동사항]

오빈(吳䎙)[1602~1685]은 1632년(인조 10) 알성시(謁聖試)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도원찰방에 제수된 뒤 원수종사관(元帥從事官), 평안도도사, 호조·공조의 정랑을 거쳐 사헌부지평·사헌부장령·세자시강원문학 등을 지냈다. 1644년(인조 22)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진주목사를 거쳐 1650년(효종 1) 강계부사가 되어 몰래 국경 넘어 장사를 하는 잠상(潛商)들을 없애는 등 많은 치적을 쌓았다.

그러나 인조의 유모 아들인 이신우(李信友)가 왕제인 인평대군(麟坪大君)의 문서를 가지고 와서 강계부 삼화(蔘貨)의 이권을 빼앗으려 하자 그 문서를 불태우고 이신우를 축출한 일이 화가 되어 아산과 연안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에 풀려 나왔다. 1662년(현종 3) 오위장에 등용되고 첨지중추부사와 공조참의를 역임하였으며, 1681년(숙종 7)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승품하여 동지중추부사겸총관이 되었다. 1684년(숙종 10) 인조의 계비인 장렬왕후(莊烈王后)의 회갑을 계기로 지중추부사로 승진한 뒤 기로소에 들어갔다.

[저술 및 작품]

2권 1책의 『농재집(聾齋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숙헌(肅憲)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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