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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579
한자 金永堅
영어음역 Gim Yeonggyeon
이칭/별칭 뇌지(牢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양윤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서울특별시 구로구
성별
본관 김해(金海)
대표관직 이조참판

[정의]

조선 전기 부평도호부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뇌지(牢之). 할아버지는 김효분이고, 아버지는 호조판서를 추증 받은 김진손(金震孫)이다. 대사헌을 역임한 김영정(金永貞)의 형이다.

[활동사항]

김영견(金永堅)은 부평[현 서울특별시 구로구를 포함한 인천광역시 북부 및 북동부, 경기도 부천 일대] 지역에서 태어나, 1454년(단종 2) 수의(修義)로 있으면서 별시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1457년(세조 3) 대교(待敎) 직에 있으면서 문과 중시에 응시하여 다시 급제하였다. 세조가 즉위한 이후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2등에 책봉되었다. 지방관으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전라도 여러 읍의 농업 상태를 파악, 흉년을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농민들의 질병을 보살피기도 하였다. 또한 경차관으로 나갔을 때도 농민 가운데 배고파 죽는 자, 종기가 난 자, 떠돌아다니는 자, 굶주리는 자가 있으면 수령을 죄 줄 것을 청하였다. 1475년 좌부승지로 있을 때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어 사직을 청하였으나 오히려 이조참판에 승진되었다.

[저술 및 작품]

1455년 『문종실록(文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471년 『세조실록(世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이후에도 여러 가지 역사서를 편찬, 간행하는 데 관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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