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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1876
한자 復興社勞動組合
영어음역 Buheungsa Nodongjohap
영어의미역 Buheungsa Labor Union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현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노동조합
설립연도/일시 1978년연표보기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있었던 노동 운동 관련 사회단체.

[개설]

부흥사는 봉제업체로서는 드물게 비교적 안정된 기업체였음에도 불구하고 작업 환경은 매우 열악하였다. 노동자의 초임은 2,240원에 불과하였으며, 본공이 되어도 초임이 2,460원밖에 되지 않아 임금 수준이 매우 낮았다. 또한 창문도 없는 방 하나에 10명에서 최대 25명까지 기거하며 외출에 통제를 받고, 기숙사는 물론 회사 안팎의 청소까지 모두 담당해야 하였던 기숙사생들의 환경은 거의 최악에 가까웠다.

[설립목적]

부흥사는 1984년에 기업 순이익이 36억 원에 달할 정도로 안정된 기업체였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에 대한 낮은 임금과 과도한 생산량 강요, 특근과 같은 부당한 노동 시간 연장 등을 요구하였다. 이에 부흥사 근무 노동자들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할 목적으로 부흥사 노동조합을 설립하였다.

[변천]

부흥사 직원 최태임, 안경환, 김복실, 전규자, 이선주, 공계진, 박말희, 정해경, 장미희, 김미경 등을 중심으로 하여 1978년 부흥사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설립 당시 조합원 수는 353명에 달하였다. 이후 활동가들 내부에서 노조의 활동 방향에 대한 의견 차이와 갈등으로 여러 차례 구조 개선의 과정을 겪었는데, 1985년 박찬선 집행부가 등장하면서 안정권에 들어서게 되었다.

[활동사항]

부흥사 노동조합은 친목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노동자의 임금 인상과 작업 환경 개선 및 교육 활동과 함께 회사 측에 맞서 적극적으로 일요일 특근 거부 운동과 시말서 제도 폐지 운동을 진행하였다. 또한 노동조합의 민주화를 위하여 중간 노조와 어영 노조에서 각기 활발한 활동을 펼쳤는데, 1983년에는 최태임이 어용 노조 전체의 변화를 위해 힘썼고, 1984년에는 친목 활동을 주로 담당하였던 활동가들이 노조 간부나 대의원으로 진출하여 적극적으로 노조에 참여하면서 노조를 민주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의의와 평가]

부흥사 노동조합구로공단 동맹 파업에 참여하였던 노조 가운데에 노조를 민주화시키기 위해 활동을 전개한 대표적인 노동조합이다. 구로공단 지역에서 노동조합이 자리 잡아 가기 시작하면서 노조의 활동을 공유하고 활동 방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활동가들 사이에서 갈등이 표출되기도 하였는데, 부흥사 노동조합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가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나서 노동조합을 민주화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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