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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A020202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다일

2010년 현재 남구로역 4번 출구에서 구로3동을 둘러보면 온통 다세대 주택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요즘 말로 빌라라고 부르는 건물들인데, 한 건물이 보통 20평[66.12㎡] 남짓한 크기다. 그리 넓지 않은 건물들이지만 대부분 4층에서 5층 정도로 높게 올렸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골목이 좁다. 빌라의 건물과 건물은 거의 맞닿아 있어 주차를 위해 배려한 곳이 거의 없다. 각각의 빌라마다 지하부터 5층까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초복을 앞둔 여름이라 그런지 모두들 방문을 열어 두고 모기장이나 대나무 발을 걸쳐 두었다.

빌라를 조금 지나면 아파트가 보인다. 두산위브아파트, 한신아파트, 삼성래미안아파트이다

비좁은 땅에 우뚝하게 솟아 있던 빌라 너머로 더 크고, 더 높은 아파트가 서 있는 것이다. 두산위브아파트와 한신아파트는 2006년 공영 주택을 재개발하면서 만들어졌고, 삼성래미안아파트는 그 전에 시영아파트를 재개발한 것이다.

시영아파트는 원래 연탄 공장 자리에 지어졌다. 거꾸로 말하면 연탄 공장과 공영 주택이 있던 지역이 이렇게 바뀐 것이다. 아파트 단지 옆으로는 신세계, 해피랜드F&C, 이앤씨드림타워 등 20층은 족히 될 듯 보이는 대형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공영 주택이 빌라로 변했다가 다시 아파트로, 그 뒤에 대형 벤처 건물로 변하며 구로구의 개발사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재개발을 반대하던 사람들]

구로3동 지역은 1960년대 두 가지 건축물만 있었다. 하나는 공장 건물이고 하나는 공영 주택, 간이 주택이었다. 구로공단[정식 명칭은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이 조성되면서 생겨난 공장 건물들은 서울은 물론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었다. 수만 명이 일하던 구로공단은 공장 지대의 대명사처럼 인식됐다. 바로 그 옆에 공영 주택, 간이 주택이 들어서 있었으나 사람들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벌집으로 불리던 가리봉동의 방들과는 또 다른 사연을 가진 거주지였다.

현재 구로3동에 촘촘하게 세워진 빌라들은 공영 주택, 간이 주택을 재건축한 것이다.

1960년대 정부가 서울시 무허가 건물을 정비한다는 이유로 무허가 집단 거주촌의 이주를 추진했다. 이때 만들어진 공영 주택, 간이 주택은 1990년대에 들어서자 재개발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구됐다.

사실 1990년대까지 공동 화장실을 쓰며 2.5평[8.26㎡]의 좁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때까지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서로 집을 팔고 사면서 많게는 60평[198.35㎡]까지 가진 사람도 있었고, 적어도 4평[13.22㎡]에서 8평[26.45㎡]까지 집을 넓혀 가며 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재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1980년대도 마찬가지고 1990년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재개발을 가로막는 주된 이유는 바로 ‘집세’였다. 1970년대부터 공단 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방 한 칸을 내주고 받아 온 집세는 구로동 공영 주택 주인들의 주된 수익이 됐다.

1층짜리 집을 위로 한 칸 더 늘려 2층을 만들어 세를 받았고, 옆집을 사서 아예 임대 사업처럼 세를 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꾸준히 집세가 들어오는 상황에서 재개발이 달가울 리 없다. 재개발을 하면 지금 있는 집은 모두 사라지고 그 자리에 번듯한 아파트가 들어온다. 하지만 아파트를 짓는 데 필요한 부담금도 내야 하고, 그동안 집세는 받을 길이 없으며, 완공되고 나면 세를 줄 집도 없어진다. 이런 상황을 걱정한 사람들이 재개발을 반대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면서 재개발 추진론이 구로3동에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쉽게 재개발하기 위해 선택한 다세대 주택]

재개발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나는 각자 자기 땅만큼 알아서 짓는 다세대 주택 재개발이었고, 하나는 수십, 수백 가구가 모여서 조합을 만들어 아파트를 짓는 것이었다. 당시 구로동 사람들은 크고 좋은 집을 원하지 않았다. 다만 집 안에 화장실이 있고 물과 전기가 잘 공급되는 기본적인 집을 원했다. 그리고 수백 가구가 모여서 의견을 합칠 여유도 없었고, 기다릴 의지도 부족했다.

때마침 구로구청에서는 용적률을 80%까지 인정해 줬고, 1990년대 구로3동 지역은 빌라라고 불리는 다세대 주택으로의 재개발이 성행했다. 2.5평의 공영 주택이 있던 자리를 재개발하니 십여 가구를 합쳐서 진행해 봐야 널찍한 건물 하나 올리기 힘들었지만, 구로3동의 대부분의 공영 주택은 이때 빌라로 재개발됐다.

빌라는 아파트보다 저렴하고 빨리 입주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집을 짓고도 계속 집세를 받을 수 있었다. 자기 집도 생기고 집세를 받을 공간도 생기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구로3동에는 빌라 재개발이 돈 버는 지름길로 인식됐다.

[구로동 다세대 주택의 특징]

1969년부터 구로3동에서 살아온 이인엽[1955년생] 씨는 이 모든 과정을 다 지켜봤다. 재개발 추진 과정에 직접 관여하기도 했다. 이인엽 씨가 말하는 구로동 빌라의 특징은 이렇다. 먼저 주차장 공간이 없다. 좁은 지역을 재개발해서 다세대 주택을 만들다 보니 주차장에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구로구청에서도 주차장에 대한 대책이 없어도 허가를 내줬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구로동은 밤만 되면 주차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다.

또 작은 주택이 많다. 2.5평 자리가 기본 크기였던 공영 주택을 이리저리 합쳐서 재개발했으니 대부분 10~20여 평[33.06~66.12㎡]의 좁은 공간에 지어야 했다. 대신 4층, 5층까지 올리고 지하에도 방을 만들어서 역시나 많은 가구가 살 수 있었다. 지금도 대부분의 다세대 주택은 20평[66.12㎡] 내외의 소형 평수로 지어져 있다.

[정보제공]

  • •  이인엽(남, 1955년생, 구로구 구로3동 주민, 구로3동 주민자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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