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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B010103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2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다일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마을에는 대부분 신령하다고 믿고 있는 산이나 바위 혹은 나무가 있다. 산을 넘을 때 잘 보살펴 주기를 기원하는 바람에서 돌탑을 쌓기도 하고 바위를 향해 기도를 하고 지나기도 한다. 구로구 가리봉동에도 신성하다고 알려진 나무가 있다. 지금의 가리봉2동 지역에 위치한 측백나무가 바로 그것이다.

마을 노인들은 ‘측백나무’라고 부르지 않고 ‘큰 상나무’라고 부른다. ‘상나무’는 ‘향나무’의 강원도 사투리인데, 구로구 지역에서는 측백나무를 ‘상나무’라고 부르고 있었다.

[주택으로 둘러싸인 측백나무]

가리봉동의 측백나무는 영일초등학교 근처에 있다. 주택가에 둘러싸여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다. 행정 구역으로는 가리봉2동 13-175번지. 차 한 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길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노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나무가 있는 이곳은 ‘골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그런데 노인들의 증언이 엇갈린다. 이곳을 ‘잔디고개’라고 소개하기도 하고 ‘조마고개’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조마고개는 한글학회가 1965년에 발간한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무아래’ 혹은 ‘모아래’라고 불리던 마을 뒤 등성이 너머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산이 용마혈(龍馬穴)인데, 옛날 오랑캐들이 근처에 진을 치고 혈을 끊어서 정기가 없어진 산의 고개, 곧 조마(弔馬)의 뜻으로 불린 고개라고 한다.

가리봉동에 공장이 들어서기 전인 1950년대만 해도 이곳은 가리봉동의 끝자락이었다. 골말에서 고개를 넘어 ‘무아래[또는 모아래]’라 불리는 현재의 가리봉1동으로 넘어가는 길 언덕에 측백나무가 자리했다.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온 윤재병[1932년생] 씨는 “우리 집에서 영등포로 가려면 언덕을 넘어야 하는데 신성한 곳이라 해서 함부로 장난치거나 그러질 못 하게 했어.”라고 말했다. 또 “시집을 오거나 사람이 죽어서 상여가 나갈 때도 그 언덕을 넘지 못하게 하고 빙 돌아가게 했었지.”라고 말을 이었다. 윤재병 씨를 비롯한 마을의 노인들은 “이 언덕은 어릴 때부터 신성한 곳”이라고만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기원제를 지낼 만큼 영험한 거야]

가리봉2동에서 평생을 살아온 윤묘병[1927년생] 씨는 측백나무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했다. “원래는 한 그루가 더 있었는데 피란 갔다 돌아오니까 없어진 것 같아. 아마 전쟁 때 불에 타 버렸거나 뽑혔겠지. 그런데 예전에는 저 나무에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그랬다 하더라구. 그것 말고도 그냥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밥 한 공기 올려놓기도 했고 물 떠다 기도하고 지나가기도 하고 그랬지.”

윤묘병 씨의 기억에 따르면, 측백나무에 제를 지내는 날이 아니더라도 주민들이 오고가며 젯밥을 놓고 기도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고 했다. 구로구에서는 2004년 12월 27일 가리봉동 측백나무를 구로구 보호수로 지정했다. 높이 15m, 흉고 둘레 2.5m로 전국 최고령 측백나무라는 이유에서다.

가리봉동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정월 대보름과 가을 추수기에 측백나무 앞에서 고사를 지냈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지난 2003년부터 매년 10월에 공식적인 기원제를 드리고 있다.

가리봉동 측백나무제라고 명명한 기원제는 보통 오후 4시쯤 시작하는데, 측백나무 앞에서 향을 피우고 잔을 올려 신을 부르는 강신(降神)과 축문을 낭독하는 독축(讀祝), 절을 올리는 참신(參神) 순서로 제를 올리고, 인근의 영일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지역 주민을 위한 다과회를 즐기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2009년 10월 27일에도 측백나무 기원제가가 행해졌다.

윤묘병 씨는 나무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도 해 주었다. 가리봉2동 골말 지역은 예부터 물이 많아 습한 지역이었다는 것. 그래서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뱀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윤묘병 씨의 집에도 큰 뱀이 나타나서 쫓아내느라 고생을 했다고 한다. 윤묘병 씨는, 마을에 뱀이 많아서인지 측백나무에도 큰 뱀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나무를 훼손하면 재앙이 온다는 소문도 있는데,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에 나무가 훼손되지 않고 지금까지 마을 한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보제공]

  • •  윤묘병(여, 1927년생, 구로구 가리봉동 주민)
  • •  윤재병(남, 1932년생, 구로구 가리봉동 주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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