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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시대 가리봉동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B020102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다일

1998년, 정부가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면서 시작된 금융 위기로 대한민국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많은 사람이 원치 않는 퇴직을 했고 이어지는 기업들의 부도로 인해 거리로 몰려난 사람들도 늘어났다. ‘노숙자’, ‘명퇴자’, ‘실업자’가 시대의 아이콘처럼 등장했다. 가리봉동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가리봉동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은 이 동네 재산가들이 1998년, 이른바 ‘IMF 시대’에 급격하게 변했다고 말했다. 당시는 구로공단의 공장들도 쇠락하는 시기여서 지역에서 피부로 느끼는 체감 경기는 더욱 차가웠다고 입을 모았다.

[가리봉동 제일의 부자도 몰락했어]

알짜배기 부자들은 자기 재산을 자랑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겉모습도 수수하고 평범해 대단한 자산가인지 구분할 수 없다고 한다. 가리봉동에도 수많은 건물이 있고 땅이 있으니 당연지사 부자들이 많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쉽게 만날 수도 없고, 만난다고 해도 재산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 주진 않을 것은 뻔한데, 의외의 곳에서 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필자가 가리봉시장을 찾은 날, 한 파전집 앞에서 나이 지긋한 몇몇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 해도 지지 않은 늦은 오후, 술잔을 기울이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염치없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가리봉동 건물과 땅에 대한 이야기를 몇 마디 하다 보니 ‘김철수[가명]’라는 이름이 나왔다. “이 동네에서는 아주 내놔라는 갑부여. 옛날부터 갑부지.”라며 이완기[1952년생] 씨가 충청도 억양이 살짝 섞인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시흥 방향으로 길가에 늘어선 건물들이 있는데, 이 근처 건물 여러 곳이 한 사람의 소유였다는 이야기였다. “원래 땅만 있고 아무것도 없는 터였는데 건물을 지어 올리더라고. 볼링장, 농협 이런 것이 다 그 건물에 들어섰고…….”

하지만 1998년, 이른바 IMF 시절을 겪으면서 건물의 주인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완기 씨가 가게를 하는 건물도 원래는 김철수 씨의 소유였다.

여러 건물을 가지고 있던 김철수 씨는 재산 관리를 매형에게 맡겼다고 한다. 이완기 씨에 따르면, “당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매형이란 사람이 재산 관리를 하다가 외국으로 이민을 갔대. 그게 뭐가 잘 안 돼서 그런지 아니면 무슨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건물들을 많이 팔았지. 지금 내가 장사하는 건물도 그때 새 주인이 사서 들어온 거야. 14억인가에 샀다는데 지금 한 20억 한다니까 이 건물 산 사람도 돈 많이 번 거지.”

가리봉동 제일의 부자로 불리던 김철수 씨에 대해서는 그 뒤로 소식을 못 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땅만 있으면 은행에서 돈을 빌려 건물을 올렸던 김철수 씨의 사업이 잘못 된 것이 아닌가 추측만 하고 있다. 주변 상인들의 얘기를 들어 봐도 이제 가리봉동에는 소문난 부자는 없어 보인다. 공장이 들어서기 전처럼 넓은 땅을 가진 사람도 없으니 다들 작은 주택, 빌라 한 칸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이다.

[가리봉동을 다시 찾는 사람들]

1960~1970년대를 가리봉동에서 보낸 많은 사람들은 가리봉동에 향수를 갖고 있다. 젊은 시절 고생하며 다니던 공장이며, 그 안에서 친구와 동료와 선후배와 함께 지낸 이야기들이 모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가리봉동에서 처음에는 빵집을 하다가 지금은 해미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완기 씨는 “어느 날 중년의 부인들이 횟집으로 들어왔어요. 그러더니 ‘혹시 여기가 빵집 아니었나요? 크리스탈 베이커리라고?’라고 물어 보자나요.

그게 제가 횟집으로 업종 전환하기 전에 했던 빵집 이름이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 봤더니, 자기들 젊었을 때 여기서 일하면서 빵도 많이 사 먹었다네요. 그 추억을 되살려 보려고 다시 가리봉동에 왔는데 다 바뀌고 없어졌다고 아쉬워하대요.”

불과 20~30년 만에 일어난 가리봉동의 변화였다. 특히 최근 10년간 가리봉동 옆에 위치한 구로동이 디지털 단지로 바뀌면서 변화는 더욱 가속됐다. 이제는 불과 5년 전 모습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가리봉시장은 10년 동안 크게 변했다. 한국 상점이 대부분 사라지고 중국인을 상대로 하는 가게들이 거리를 차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보제공]

  • •  이완기(남, 1952년생, 구로구 가리봉동 주민, 가리봉상가대책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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