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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B030303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다일

가리봉동에는 중국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 중 1990년대 후반에 벌집으로 들어오게 된 사람들이 가리봉동 중국 동포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역 사회가 이뤄졌다. 가리봉시장을 중심으로 중국 동포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중국 식당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가리봉동에서 만난 『동포타운신문』의 김형필[1970년생] 편집국장은 “중국 동포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며 작은 중국 도시처럼 바뀌고 있는 가리봉동을 소개했다.

[언어 소통의 문제에서 시작된 자율방범대]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어디를 가도 서로서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구로구 가리봉동에 자리 잡은 중국인들이 그렇다. 대부분 조선족인 이들은 한국말을 쓴다. 하지만 국적은 중국이다. 중국에서는 소수 민족이라 다수 민족인 한족과의 관계가 쉽지는 않았다. 소수의 사람들은 어디서나 약자가 된다. 조선족 역시 한민족이다. 남북으로 나뉘기 전에는 모두 한나라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은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들에게 한국은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얼굴 모양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조국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박성학[1955년생]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에 들어온 지 햇수로 6년째인 박성학 씨는 현재 가리봉동에 살고 있다.

박성학 씨는 가리봉동에서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 자율방범대 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가리봉동 거주민 중 거의 1/2이 중국 국적을 갖고 있다 보니 이런 저런 문제들이 발생한다. 중국인들 간에 분쟁도 있고 한국 주민들과 중국인들 간에 사건들도 있었다. 또한 가리봉동에 거주하는 한족 중국인들, 소수의 인도·베트남·필리핀 사람들까지 여러 민족 사이에서 분쟁이 발생했다. 그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국인들 간의 분쟁은 한국 경찰이 조율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조선족의 경우 한국말을 사용하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한족이나 만족을 비롯한 다른 민족들은 한국말을 하지 못한다. 한국 경찰이 모두 중국어를 하는 것도 아니니 통역이 자주 필요해진다. 가리봉동 자율방범대는 그래서 생겨났다.

[한국인과 중국인의 완충 역할로 범죄 예방에 도움]

가리봉동에서 중국인들이 연관된 사건·사고가 늘어 경찰과 함께 자율방법대 활동이 중요해졌다. 자율방범대를 시작한 지 3년째인데 성과도 많았다. 중국인들과 한국인들 사이에 완충 역할을 했다. 같은 민족이라지만 문화가 달라 일어나는 마찰에는 더욱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이런저런 사건 사고에 관여된 중국인들에 대해 통역 역할을 하고 있다. 경찰에게도 큰 힘이고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큰 역할이었다.

경찰 관계자들도 자율방범대의 역할을 인정했다. 현재 15명으로 구성된 자율방범대는 1주일에 세 번 경찰과 함께 순찰을 돌고 있다. 덕분에 한때 우범 지역으로 알려졌던 가리봉시장 일대가 밝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리봉동이라는 구역 안에 같이 살게 된 여러 민족들. 사회적으로 충돌도 하고 조절도 하면서 북적북적 살아가고 있다. 가리봉동 벌집이 말 그대로 ‘한 지붕 열두 가족’이라면 가리봉동은 말 그대로 ‘한 지역 여러 민족’이다.

[정보제공]

  • •  박성학(남, 1955년생, 구로구 가리봉동 주민, 중국 국적)
  • •  이주학(남, 1959년생, 구로구 가리봉동 주민, 중국 국적)
  • •  김형필(남, 1970년생, 구로구 가리봉동 『중국동포타운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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