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4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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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注山池碑 |
이칭/별칭 | 주산지 송덕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 8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병선 |
건립 시기/일시 | 1771년 - 주산지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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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주산지비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 87 |
성격 | 송덕비 |
관련 인물 | 이진표|임지원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비신 78.7㎝[높이]|33.1㎝[너비]|11.1㎝[두께], 가첨석 19.2㎝[높이]|45.5㎝[너비]|31.5㎝[두께] |
소유자 | 청송군 |
관리자 | 청송군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 주산지 입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송덕비.
[개설]
주산지비는 1771년(영조 47)에 주산지 입구에 건립된 조선시대 송덕비(頌德碑)이다. 주산지 송덕비라고도 한다. 주산지는 1720년(조선 경종 원년) 8월에 착공되어 이듬해인 1721년 10월에 완공되었다. 수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쳐 현재에 이르는데, 주위의 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주산저수지에 고이면서 아랫마을인 주산지리에서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건립 경위]
1720~1721년 주산지 축조에 공이 컸던 이진표(李震杓)와 임지훤(林枝萱)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송덕비로, 이진표의 후손 월성이씨, 임지훤의 후손 및 조세만(趙世萬)이 1771년에 건립하였다.
[위치]
주산지 입구 자연석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형태]
자연석 기단에 직사각형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 모양의 가첨석(加檐石)을 얹은 양식이다.
[금석문]
비석 전면에는 ‘건륭삼십육년신묘시월일립(乾隆三十六年辛卯十月日立) 이공제언성공송덕비(李公堤堰成功頌德碑) 일장저수불망천추(一障貯水不忘千秋) 유혜만인유일편갈(流惠萬人唯一片碣)’이라 하여, 송덕비의 건립 일시와 이진표의 공적을 기리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또 후면에는 ‘처사월성이진표자석현석관손성배관배의배(處士月城李震杓子錫玹錫瓘孫聖培瓘培義培) 수절충장군임지훤(首折衝將軍林枝萱) 창전연시참봉임지영(倡典涓寺參奉林枝英) 내자시직장임차명(內資寺直長林次明) 임만휘(林萬輝) 통정대부조세만외(通政大夫趙世萬外) 강희오십구년경자팔월일시역신축시월일필역작자육십육명(康熙五十九年庚子八月日始役辛丑十月日畢役作者六十六名)’이라 하여, 송덕비를 세운 이진표·임지훤의 후손 및 조세만의 이름과 주산지를 축조한 시기를 새겨 놓았다. 전면의 송덕비 내용은 “정성으로 둑을 쌓아 물을 가두어 만인에게 혜택을 베푸니 그 뜻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한조각 돌을 세운다”이다.
[현황]
주산지비의 크기는 비신이 높이 78.7㎝, 너비 33.1㎝, 두께 11.1㎝이며, 가첨석은 높이 19.2㎝, 너비 45.5㎝, 두께 31.5㎝이다. 비신의 4면 모두 조금씩 부식이 되어 검은색과 흰색의 반점 같은 모양이 나타나고, 글자도 마모가 심하여 판독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모내기법[이앙법]이 보편화되면서 저수지나 보(堡)의 건설이 종종 이루어졌으나, 주산지비와 같이 저수지 준설의 목적과 저수지를 준설한 조상을 칭송하는 송덕비는 그리 흔하지 않으므로 보존할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