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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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嶹 |
영어공식명칭 | Cho Do |
이칭/별칭 | 사중(士重),송은(松隱)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홍수 |
[정의]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사중(士重), 호는 송은(松隱). 아버지는 조시필(趙時㻶), 어머니는 통사랑(通仕郎) 전유성(全有性)의 딸 용궁전씨(龍宮全氏)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권감(權椷)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며, 할아버지는 무공랑(務功郞) 조함철(趙咸哲)이다. 조도의 부인은 이태길(李泰吉)의 딸 월성이씨(月城李氏)와 이규령(李奎齡)의 딸 가평이씨(加平李氏)이다.
[활동 사항]
조도(趙嶹)[1658~1717]는 어릴 때부터 사물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영리하여, 학문이 일취월장하였다. 이에 집안 어른이 “이 아이가 장차 우리 집안을 크게 빛낼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9세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예절에 따라 상제(喪制) 노릇을 하면서 입에는 고기와 생선을 가까이하지 않았으며, 몸에는 수질(首絰)과 요대(腰帶)를 벗지 않고 부친의 죽음을 슬퍼하며 통곡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할아버지 조함철과 종조부 오의현(五宜軒) 조함세(趙咸世)[1607~1690] 등은 어린 손자가 비통에 빠져 큰 병이 날 것을 염려하여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달랬으나, 조도는 입 한 번 떼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그렇게 삼년상을 치르는 어린 조도의 모습은 마치 어른들과 같았다고 한다.
조도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효성을 다하였다. 바깥에 나갈 때는 반드시 아뢴 다음에 나갔고, 돌아올 때는 반드시 시간에 맞추어 귀가하였다. 여러 차례 향시(鄕試)에 응시할 것을 권유받았으나, 홀어머니 곁을 지키기 위하여 끝내 향시에 응시하지 않았다. 조도는 형제간의 우애도 돈독하여 어린 동생을 교육시켜 그 뜻한 바를 성취할 수 있게 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 상속받은 유산을 분배할 때도 비옥한 농토를 동생에게 물려주고 척박한 땅을 자기 몫으로 하였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조도의 깊은 우애심에 탄복을 금치 못하였다. 조도는 품계가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