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13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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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者峴 |
분야 | 구비전승·언어·문학/구비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집필자 | 권미숙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0년 - 「삼자현」 『청송군지』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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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삼자현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부남면 대전리 |
성격 | 설화|지명 유래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강도|노총각|신부 |
모티프 유형 | 지명 유래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와 부남면 대전리 사이에 있는 삼자현 유래에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와 부남면 대전리 사이에 험한 고갯길이 있었다. 이 고개는 사나운 짐승과 강도가 많아서 혼자서는 고갯길을 넘을 수가 없어 늘 세 사람 이상 모여서 고개를 건넜다는 데서 ‘삼자현’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지명 유래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0년 6월 30일 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집하고 청송군에서 발행한 『청송군지』의 706쪽에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채록 경위는 확인되지 않는다.
[내용]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와 부남면 대전리 사이에 험준한 고개가 가로 놓여 있는데 그 거리가 30리[12㎞]라고 한다. 태산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고갯길은 버스도 힘겨워 헐떡이면서 가쁜 숨을 몰아쉰다. 차창에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한 계곡이 속세를 떠나 딴 세상으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
산마루에 오르면 아담한 휴게소가 마련되어 있고 사방에 바라보이는 것은 소백산이 이어져 있는 산봉우리뿐이다. 저 멀리 부남면 쪽으로는 우리나라 팔경 중에 하나인 주왕산의 기암들이 장엄하게 우뚝 솟아 관광객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 준다. 옛날엔 괴나리봇짐을 지고 토끼길만한 좁고 험한 산속을 헤치면서 넘나들었던 고개였기에 슬픈 사연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산길이 워낙 험하고 멀어서 대낮에도 강도가 출몰하여 소를 판 돈이나 몸에 지닌 물건을 빼앗겼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그 재를 넘어야 할 때에는 재 밑에서 며칠이라도 기다렸다가 세 사람 이상 모이게 되면 겨우 재를 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고개를 ‘삼자현(三者峴)’, 혹은 ‘서넘티’, ‘서넘재’라고 했는데 지금도 그때의 이름 그대로 불리고 있다.
어떤 가난한 노총각이 서른 살이 가까워서 신부를 얻게 되었는데, 처가인 현동면 월매리에 다녀오기 위해 아내와 함께 삼자현을 넘던 중 산적이 나타나서 아내를 빼앗겨 버렸다. 그는 너무나 억울하고 원통해서 종일토록 산이 무너지도록 통곡하다가 소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어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그 옛날 울창하던 숲은 그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6.25전쟁 전에 무장공비들의 출몰이 심하자 그 피해를 막기 위해 도로 연변의 수목을 말끔히 베어 버렸기 때문이다.
[모티프 분석]
「삼자현」의 주요 모티프는 강도와 사나운 짐승으로 험한 고갯길을 혼자 넘을 수 없어 세 사람 이상이 모여야 겨우 고갯길을 넘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대구광역시에서 경상북도 청도군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전하는 「팔조령」 이야기도 이와 같은 유형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