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1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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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두꺼비 바위 |
분야 | 구비전승·언어·문학/구비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집필자 | 권미숙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0년 - 「돌무지」 『청송군지』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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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두꺼비바위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 |
성격 | 설화|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용당마을 사람들|무당 |
모티프 유형 | 지명 유래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 용당마을에 있는 두꺼비바위에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마을에 있는 뱀산이 움직일 수 없도록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뱀산의 허리까지 돌무지를 쌓아 올려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0년 6월 30일 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집하고 청송군에서 발행한 『청송군지』의 707~708쪽에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채록 경위는 확인되지 않는다.
[내용]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 용당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하늘을 우러러 숭배하고 땅을 의지하여 어렵사리 겨우 생계를 이어 가는 용당마을 사람들이지만 마음은 소박하기만 하였다. 험준한 산속 골짜기에서 메마른 땅을 개간하여 알뜰히 농사를 지었으나 수확은 뜻대로 되지 않아 해마다 가난을 면할 때가 없었으며, 그나마 액운까지 겹쳐 고달픈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용당마을에서 바라보이는 앞산 허리는 흡사 뱀의 형태와 같아서 언제나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 산에는 나무를 하러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산밑을 지날 때마다 무슨 재앙이나 당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공손히 절을 하고 지나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그 산을 뱀산이라고 불렀다. 뱀산 밑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생김새가 두꺼비를 닮았다고 해서 그 바위를 두꺼비바위라고 불렀다.
어느 해 추석 명절에 용당마을에서는 재앙을 없애고 마을 사람들의 행운을 기원하는 뜻에서 두꺼비바위 앞에 제사상을 마련하고 무당이 굿을 하게 되었다. 무당의 춤이 무르익어 갈 무렵 뱀산이 꿈틀거리니 두꺼비바위도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 상황을 바라본 마을 사람들은 ‘뱀이 제물을 노리는데 뱀과 두꺼비가 싸워서 만일 두꺼비가 진다면 두꺼비만을 섬기고 저를 섬기지 않았다는 앙심으로 뱀이 마을에 큰 재앙을 가져오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대책을 찾기 위해 의논을 하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밤낮으로 쉬지 않고 돌을 모아 뱀산의 허리까지 닿도록 돌무지를 쌓아올려 마침내 뱀산이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 후부터는 마을의 액운도 없어지고 해마다 용당마을에는 풍년이 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팔월대보름이 되면 돌무지 앞에서 정성을 들여 제사를 지내고 수호신처럼 섬겨왔다고 한다. 그 돌무지는 오랜 세월 비바람 속에서도 허물어지지 않고, 이 마을의 수호신처럼 아직도 흔적이 남아 있다.
[모티프 분석]
「돌무지」의 주요 모티프는 뱀에 대한 두려움과 두꺼비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는 예부터 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와 달리 두꺼비에 대한 생각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 두꺼비와 태몽, 혹은 두꺼비와 재물을 함께 보는 것 등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