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여도』 「양주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12023
한자 廣輿圖楊州牧
영어공식명칭 Gwangyeodo Yangjumok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손승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세기 전반 - 『광여도 간행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고지도

[정의]

19세기 전반에 제작된 『광여도』 중 현재의 경기도 구리시를 포함하는 양주목의 지도.

[개설]

『광여도(廣輿圖)』는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만들어진 회화식 지도로서, 19세기 전반에 제작되었다. 전국의 군현을 개별적으로 그린 군현별 지도와 도별 지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사 요충지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광여도』 「양주목」은 양주목에 해당하는 지역인 지금의 서울특별시를 비롯하여 경기도 구리시, 남양주시, 양주시 등을 그린 지도이다.

[편찬/간행 경위]

19세기에 들어서서 중앙 정부에서 각종 기호로 지리 정보를 표현하는 기호식 지도를 정책 과정에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회화식 지도는 중요성이 다소 감소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당시의 정치적 환경과 어우러지면서 회화식 지도집이 민간에 유출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광여도』는 18세기에 제작되었던 각 군현별 지도집이 민간에 유출되면서 만들어진 지도이다.

[서지적 상황]

『광여도』는 「세계 지도」, 「외국 지도」, 「요계 관방도」, 「조선 전도」, 「조선 각 군현별 지도(주기)」, 「군사적 요충지 지도」 등을 포함하여 총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책의 내용은 1책 경기도, 2책 충청도, 3책 전라도, 4책 경상 좌도, 5책 경상 우도, 6책 평안도 및 황해도, 7책 강원도 및 함경도 등을 수록하였다. 총 381장에 달하는 채색 지도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한 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다.

[형태]

지도의 우측 상단에 지도의 이름이 양주목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지도의 오른쪽이 동쪽이다. 지도는 다양한 색으로 채색되었으며, 크기는 가로 36.8㎝, 세로 28.6㎝이다.

[구성/내용]

제1책에 실려 있는 『광여도』「양주목」에는 산줄기가 산의 연속체 형태로 묘사되어 있고, 하천은 엷은 푸른색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도로는 표기되어 있지 않다. 각 면의 명칭을 노란색 사각형 안에 표기했으며, 창고, 사찰, 서원, 능, 향교, 객사 등의 정보도 표기했다. 당시 양주목의 사회 경제상을 보여 주는 설명문인 주기(註記)가 첨부되어 있다.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陵)으로, 그 외의 무덤들은 묘(墓)로 표기했다.

한양을 경도(京都)로 표기했으며 그 북쪽으로 인왕산, 삼각산, 도봉산 등이 표기되었다. 지도의 북쪽 경계는 지금의 한탄강이며 지도에는 대탄(大灘)으로 표기되었다. 구리시 서쪽에 자리한 아차산아계산(峩溪山)으로 표기되었고, 구리시의 북쪽에 조성된 동구릉 서쪽으로 아차산이 표기되었다. 구리시의 동쪽을 흐르는 왕숙천왕숙탄(王宿灘)으로 기록했으며, 지금의 구리시에는 지도가 그려지기 이전의 행정 구역 명칭인 고양주면(古楊州面)과 지도 제작 당시의 행정 구역 명칭인 구지면(龜旨面)이 함께 표기되었다. 지도의 주기에는 각 면까지의 거리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데, 현재의 구리시에 해당하는 구지면은 양주목 관아에서 50∼60리 사이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구리시에 포함되는 지역에는 육릉내(六陵內)라는 지명과 함께 아홉 개의 동그라미가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동구릉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동구릉의 동쪽으로는 왕릉 건설 장비를 보관하던 동창(東倉)이 있으며, 남쪽으로 동구외택(洞口外澤)과 연지(蓮池)가 사각형으로 그려져 각각의 명칭이 표기되었다.

[의의와 평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전반 양주목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서, 구리시 지역의 조선 후기 모습 및 당시의 지명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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