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 제주시향토문화백과 > 삶의 주체(성씨와 인물) > 전통시대인물 > 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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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제주도에서 활동한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본명은 마르셀 라크루(Marcel Lacrouts), 세례명은 마르첼리노이다. 1871년 5월 1일 프랑스 아키텐주 지롱드 데파르트망의 주도인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1890년 9월 15일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1894년 7월 1일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1894년 8월 29일 프랑스를 출발하여 2개월 후인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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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에 유배된 승려. 보우는 선교양종(禪敎兩宗)을 다시 세우고 도첩제도(度牒制度)를 부활시키는 등 조선시대의 억불 정책 속에서 불교를 중흥시킨 승려이다. 1565년(명종 20) 6월 25일 제주도에 유배되었으며 그 해 10월 초 유배지인 북제주군 도내봉 인근에서 입적하였다. 제주목사 변협(邊協)에게 죽임을 당하였다고 한다. 보우는 15세에 금강산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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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에 유배된 승려. 석기는 충혜왕의 서자로서, 1352년 충혜왕과 사기 그릇 장수인 임신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충정왕은 석기를 승려로 만들기 위해 머리를 깎아 만덕사에 맡겼다. 하지만 원나라에서 석기를 소환할 것이라고 생각한 공민왕은 만덕사에서 석기를 데려왔다. 1356년(공민왕 5) 6월, 전호군 임중보가 석기를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반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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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에 유배된 승려. 유장은 전라남도 해남군의 대흥사 승려로서, 억불 정책을 실시하던 조선시대에 수많은 청중을 감명시킨 대강백이었다. 유장이 대흥사에서 구례군의 화엄사로 자리를 옮겨 강석(講席)을 마련했을 때 1,500명의 청중들이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고 한다. 유장의 명성을 질시했던 전라도관찰사 조모(趙某)라는 자가 누명을 씌워 제주도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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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에 유배된 승려. 휘(諱)는 지안(志安), 자는 삼낙(三諾), 호는 환성(喚惺)이다. 고향은 춘천이며, 속성은 정씨이다. 15세에 출가하여 상봉대사(霜峰大師)에게서 구족계를 받았으며, 17세에 공부를 시작하여 월담화상(月潭和尙)에게서 법을 이어받았다. 청허(淸虛) 휴정(休靜)의 5세 적손이다. 세수 66세, 법랍 51세로 입적하였다. 1690년(숙종 16) 지안은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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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사(禪師). 조선 성종 때의 선사(禪師)로서, 도근천의 수정사(水精寺) 승려이다. 수정사는 원래 고려시대 산북을 대표하는 비보사찰이었다. 이후 조선 태종 때에 이르기까지 법화사(法華寺)와 마찬가지로 노비 130명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이후에도 30명의 노비를 두던 대사찰이었다. 1487년(성종 18) 최보(崔溥)[1454~1504]가 제주 삼읍(제주목·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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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에 유배된 김정희를 방문하여 6개월 간 체류한 승려. 1786년 4월 5일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면에서 태어났다. 16세 때 남평 운흥사(雲興寺)에서 민성(敏聖)을 은사로 득도하고, 대흥사에서 민호(玟虎)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일지암에서 40여 년 동안 홀로 지관(止觀)에 전념하면서 불이선(不二禪)의 오의(奧義)를 찾아 정진하였으며, 정약용·김정희·신위 등과 교분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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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선사(禪師). 고려 충렬왕 무렵인 1275년에서 1308년 사이에 제주에 머물며 여러 편의 시를 남겨 시승(詩僧)으로 불리는 선사이다. 혜일은 제주 전역을 두루 다니며 수행을 하였는데, 특히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 산방굴사와 인연이 깊어 산방 법사라고도 불린다. 산방굴사는 혜일이 산방산 해발 150미터 지경에 있는 자연 석굴에 안에 창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