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6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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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南里大亭古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신남리 무수동 마을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곽장근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2년 - 신남리 대정 고분 전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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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9년 - 신남리 대정 고분 전북 향토 문화 연구회에서 지표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3년 - 신남리 대정 고분 전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
소재지 | 신남리 대정 고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신남리 무수동 마을 |
성격 | 고분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신남리에 있는 백제 시대 고분군.
[위치]
순창읍에서 국도 27호선을 따라 풍산면 쪽으로 1.5㎞쯤 가면 순창읍 신남리 무수동 마을 어귀가 나온다. 이곳에서 진입로를 따라 무수동 마을로 들어가 진털골로 오르는 길을 따라 안산 쪽으로 올라가면 ‘증 자헌대부 병조 판서 행여[혹은 병]절교위 고령 신공 휘홍 지묘(贈資憲大夫兵曹判書行勵[秉]節校尉高靈申公諱洪之墓)’라고 쓴 비석을 세운 민묘가 있다. 이 민묘 위쪽과 여기에서 안산 정상부 쪽으로 10m가량 떨어져 신남리 대정 고분이 있다. 이 일대는 민묘 구역으로 조성된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잡목과 잡초가 무성하게 우거진 임야 지대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82년 전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순창 지방의 전통 문화 개발을 위한 연구’라는 주제로 추진된 지표 조사를 통해 학계에 처음 존재가 보고되었다. 1989년 전북 향토 문화 연구회에서 순창군 문화 유적 지표 조사와 2003년 전북 대학교 박물관 주관으로 『순창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제작을 위해 추가로 지표 조사가 이루어졌다.
[형태]
1980년대까지 3기의 고분이 도굴로 구조가 얼마간 파악되었다. 1호분은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벽체를 쌓는 할석(割石)을 약간 안우림[內頃]되게 쌓았으며, 널길[羨道]은 길이 70㎝로 남북으로 장축 방향을 두었다. 1호분에서 10m 남짓 떨어진 2호분은 남북으로 장축 방향을 두었으며, 유구(遺構)가 심하게 훼손되었다. 무수동 마을 부근 민묘와 인접한 3호분은 본래 위치에서 얼마간 움직인 상태로 개석(蓋石)[뚜껑돌]이 노출되어 있으며, 돌방[石室] 내부가 대부분 흙으로 채워져 있다. 신남리 대정 고분은 남북으로 장축 방향을 두고 돌방 남쪽에 널길이 마련되어 굴식 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
종래의 지표 조사에서 기벽(器壁)이 두껍고 삿무늬[繩席文]와 격자무늬가 베풀어진 회청색 경질 토기 조각이 수습되었다. 그리고 순창읍 신남리 무수동 마을 부근 계단식으로 개간된 밭에 바닥이 비교적 넓고 기벽이 얇은 고려 시대 토기 조각을 비롯하여 청자, 분청사기, 백자, 기와 조각 등의 유물이 흩어져 있다.
[현황]
3기의 고분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분포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도굴로 2013년 현재 1기만 흔적이 남아 있다. 주민들은 이 일대에 도굴로 내부가 드러난 고분이 많이 있었다고 제보하였다. 순창읍 신남리 무수동 마을 지명은 안산의 모양이 춤추는 사람의 옷소매와 매우 흡사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의의와 평가]
신남리 대정 고분은 발굴 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분묘 유적의 성격 및 조영 시기를 밝히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지만 안산 남쪽 기슭 끝 부분에 분묘 유적이 자리하며, 도굴로 내부가 드러난 3기 고분이 모두 남북으로 장축 방향을 둔 굴식 돌방무덤이다. 이로 볼 때 종래 지표 조사를 통해 밝혀진 유적의 입지와 유구 및 유물의 속성을 근거로 삼국 시대 순창읍에 설치된 백제 도실군의 행정 치소와 관련한 백제계 분묘 유적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백제의 중앙과 고흥 반도를 이어 주던 내륙 교통로가 통과하는 길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