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6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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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敎用亭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신상섭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672년 - 관덕정을 중건하여 교용정으로 바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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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733년 - 교용정 증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80년 - 교용정 중수 |
원소재지 | 교용정 원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 |
성격 | 사정(射亭)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에 있던 조선 후기 정자.
[위치]
교용정(敎用亭)은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 사정 1교 대교천 변에 있었다.
[변천]
신경준(申景濬)[1712~1781]의 『여암 유고(旅菴遺稿)』에 교용정 중건기(敎用亭重建記)가 전하는데, 고을 수령이 군사 훈련을 목적으로 세운 정자로 명칭 변경과 중건 경위 등이 기록되어 있다. 기문에 의하면, 1655년(효종 6) 고을 수령 이산뢰가 관덕정이란 이름으로 대교천 변에 처음 세운 뒤 1672년(현종 13) 군수 송시걸이 중건하였고,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교용정이라는 이름으로 고쳤다. 1780년(정조 4) 군수 송문상(宋文相)[재임 기간 1732~1734]이 중수한 것을 현재의 수령 홍익철[재임 기간 1779~1780]이 수리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현황]
조선 후기 어느 때인가 훼철되어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교용정은 순창군에 딸린 부속 시설로 군사 훈련을 목적으로 활을 쏘며 심신을 수양하기 위해 순창 관아에서 지은 정자이다. 신경준은 교용정 중건기에서 정자가 아름답지만 앞에 있는 땅이 좁아서 군사 조련에 부합하지 않으니 좀 더 넓은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이는 진법(陣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기술하였다. 특히, 진법을 정전(井田)에 비겨 땅이 좁은 우리나라에서 정전을 행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잘못이듯 지형에 맞추어 진 치는 법을 조련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교용정을 옮기는 일은 오히려 백성의 부담만 늘릴 것이라고 반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