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797
한자 甲洞里孝烈碑閣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갑동리 호계 마을
시대 근대/개항기,현대/현대
집필자 김승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90년 2월연표보기 - 갑동리 효열 비각 건립
건립 시기/일시 1990년 - 갑동리 효열 비각 재건립
건립 시기/일시 1976년 - 갑동리 효열 비각 보수
현 소재지 갑동리 효열 비각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갑동리 호계 마을 지도보기
성격 비각
양식 겹처마 팔작지붕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갑동리에 있는 현대에 다시 세운 효열 비각.

[개설]

갑동리 효열 비각(甲洞里孝烈碑閣)임용진(林容鎭)의 처 열부(烈婦) 대구 배씨(大邱裵氏)와 아들 효자 임종우(林宗祐)의 효열을 기린 정려각이다. 평택 임씨(平澤林氏) 임용진은 여말 선초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인 임선미(林先味)의 15세 후손이다. 대구 배씨는 배윤복(裵胤福)의 딸로, 선조는 충숙왕 때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냈다.

대구 배씨는 나이 16세에 시집와 시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남편에게 부도(婦道)를 지킴이 남에게 귀감이 되었다. 어느 해 남편이 불치병에 걸리자, 배씨는 매일같이 남편 대신 자기를 죽게 해 달라고 신령에게 빌었다. 남편이 위급한 상황에 이르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3일간 더 살게 하였다. 하지만 결국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배씨 또한 남편을 따라 죽으려 결심하였으나 어린 자식들을 생각하며 인고의 세월을 살았다.

아들 임종우는 효자였는데, 어머니 배씨가 병환에 신음하는 겨울에 생선이 먹고 싶다하자 두꺼운 얼음을 깨어 선어를 잡아다 대접하니 마을 사람들이 효성에 감동하였다고 한다. 1890년(고종 27) 2월 조정에서 두 사람에게 정려를 내려 정려각을 건립하였다.

[위치]

갑동리 효열 비각순창군 인계면 갑동리 호계 마을 동쪽 길가에 있다.

[변천]

1890년에 세운 뒤 1976년 보수를 거쳐 1990년에 다시 건립하였다.

[형태]

갑동리 효열 비각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안에는 현판 3기, 비 2기가 있다. 비석에는 ‘유명 조선 효자 증가선대부 호조 참판 의금부사 증동몽교관 조봉대부 평택 임종우 지려(有明朝鮮孝子贈嘉善大夫戶曹參判義禁府事贈童蒙敎官朝奉大夫平澤林宗祐之閭)’와 ‘유명 조선 증통정대부 호조 참의 임용진 처 열부 숙부인 대구 배씨 지려(有明朝鮮贈通政大夫戶曹參議林容鎭妻烈婦淑夫人大邱裵氏之閭)’라고 되어 있다.

[현황]

2009년 현재 인계면 호계 마을 후손 임문영이 관리하고 있으며, 관리가 매우 잘 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