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8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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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子金興壽遺墟碑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내동리 내동 마을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승대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821년 7월 21일 - 김흥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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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907년 12월 21일 - 김흥수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934년 9월 - 효자 김흥수 유허비 건립 |
현 소재지 | 효자 김흥수 유허비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내동리 내동 마을 |
성격 | 효자비 |
관련 인물 | 김흥수(金興壽)[1821~1907]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너비,두께) | 169㎝[높이]|55㎝[너비]|17㎝[두께]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내동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세운 효자 김흥수의 비.
[위치]
효자 김흥수 유허비(孝子金興壽遺墟碑)는 순창군 금과면 내동리 내동 마을과 동전리 대장 마을을 구분 짓는 지방도 730호선 도로변 북쪽 언덕에 있다.
[형태]
재질은 화강암이며 규모는 높이 169㎝, 너비 55㎝, 두께 17㎝이다.
[금석문]
1933년 계유(癸酉) 8월 행주(幸州) 기노선(奇老善)이 비문을 썼으며, 1934년 9월 비를 세웠다. 비문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통정대부 김흥수의 자는 덕현(德賢)이요, 호는 송당(松堂)이다. 1821년(순조 21) 7월 21일에 태어나 1907년 12월 21일 향년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김해 김씨(金海金氏) 학천군(鶴川君) 김극조(金克祧)의 7세손이다. 천성이 온후하고 언행이 근엄하여 어려서부터 군자의 풍모가 있었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침식을 잊고 간병하였고 돌아가신 후에도 3년간 여막을 살아 효행의 모범이 되었다. 부인은 남평 문씨(南平文氏) 남형환(南亨煥)의 딸이며, 다섯 아들을 두었다.
[현황]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효자 김흥수 유허비는 순창군 금과면 내동리에 있는 효자를 기리는 비로 지역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