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9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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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首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정훈 |
[정의]
고려 후기 순창 출신의 문관.
[개설]
양수생(楊首生)과 순창의 관계는 양수생의 처 이씨에서 비롯된다. 이씨는 양수생이 죽은 뒤 가족들로부터 재가를 종용받자 남편의 고향인 남원으로 낙향하였다. 얼마 뒤 순창으로 이주하여 아들 양사보(楊思輔)를 키워 가문을 잇게 하였다. 양사보는 조선 태종 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함평 현감을 지냈다. 1467년(세조 13) 나라에서는 이씨에게 정려를 내려 주었다. 이씨의 정려는 현재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고려 직제학 양수생 처 열부 이씨려’라는 이름으로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72호로 남아 있다. 이후 남원 양씨는 이 지역에서 지금까지 600여 년을 세거해 오고 있다.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 증조할아버지는 양윤보(楊允保), 할아버지는 양서령(楊瑞齡), 아버지는 집현전(集賢殿) 대제학(大提學)과 지신사(知申事)를 지낸 양이시(楊以時)이다. 처는 열부로 정려된 이씨이며, 아들은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입향한 양사보이다.
[활동내용]
1376년(우왕 2년)에 종사랑 장복직장(從事郞 掌服直長)으로서 문과 을과 제2위로 급제하였다. 당시 양수생이 받은 홍패는 보물 제725호로, 현재 ‘남원 양씨 종중 문서 일괄’에 포함되어 국립 전주 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크기는 가로가 34㎝며 세로가 65㎝로 조선 시대의 교지에 비하여 조금 작은 편이다. 양수생은 집현전 제학(集賢殿提學)을 역임한 뒤 1377년(우왕 4) 요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