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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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養性 |
이칭/별칭 | 군평(君平),호호옹(虎護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종교/유교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범호 |
출생 시기/일시 | 1730년 - 임양성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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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892년 - 임양성 효행으로 정려됨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10년 - 임양성 포함된 오세 육효 정려각 건립 |
출생지 | 임양성 출생지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 |
정려각 | 오세 육효 정려각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외이3길 36-2[외이리 478]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평택 |
[정의]
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군평(君平), 호는 호호옹(虎護翁). 할아버지는 임재무(林再茂)이고 아버지는 임시채(林時采)이다. 아들은 효자 임광수(林光洙)이다.
[활동 사항]
임양성(林養性)[1730~?]은 1730년(영조 6)에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가훈을 이어받아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허벅지에 난 종기로 고생을 하자 입으로 농을 빨아내서 치료하였고, 노환에 대소변을 맛보아 병세를 가늠하였으며, 병세가 위급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먹여 7일간 더 살게 하였다. 부친상을 당하자 예를 다하여 정성껏 치렀으며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호랑이가 호위하였다고 한다.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후원에 단을 설치하고 3년 동안 소리 내어 슬프게 울어 백성으로서 충절을 다하였다.
[상훈과 추모]
1892년(고종 29) 임시채·임양성의 정려가 내려졌고, 임양성은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다. 1893년에는 임광수·임종혁(林宗赫)·임종빈(林宗彬)·임환(林煥)의 정려가 내려졌다. 1910년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에 오세 육효 정려각(五世六孝旌閭閣)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