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0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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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次周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숙정 |
출생 시기/일시 | 1918년 8월 5일 - 임차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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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54년 - 임차주 제3대 국회 의원 당선 |
활동 시기/일시 | 1958년 5월 31일 - 임차주 제4대 국회 의원 당선 |
활동 시기/일시 | 1963년 12월 17일 - 임차주 제6대 국회 의원 당선 |
몰년 시기/일시 | 1996년 9월 18일 - 임차주 사망 |
출생지 | 임차주 출생지 - 전라북도 순창군 |
묘소 | 임차주 묘소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
성격 | 정치인|국회 의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제6대 국회 의원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의 정치인.
[가계]
부인 신계수(申桂樹)와의 사이에 4남 4녀가 있다.
[활동 사항]
임차주(林次周)[1918~1996]는 일제 강점기인 1918년 8월 5일 순창에서 출생하여 27세 되던 해에 광복을 맞이하였다.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대동 청년단 단장으로 청년 운동에 종사하다가 자유당 군당 위원장으로 정치계에 입문하였다. 1978년 재경 순창 군민 향우 회장을 역임하면서 순창 군민의 애향심 고취에 몰두하였다. 1954년 소속 정당 자유당으로 제3대 국회 의원에 당선되었는데 당시 직업은 농업인이라 적혀 있다. 당선된 후 1955년 순창 중학교 분교였던 순창 여자 중학교를 독립된 학교로 개편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1956년에는 농업 은행 발기인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1958년 5월 31일에서 1960년 7월 28일까지 자유당 소속으로 제4대 국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1958년 7월 22일 『경향 신문』에 「쌀」이라는 칼럼을 써서 쌀 분배에 대한 생각을 논하기도 하였으며, 1959년에는 농업 금융 제도 시찰단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1963년 12월 17일부터 1967년 6월 30일까지는 민정당 소속으로 비례 대표 국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1967년에는 신민당으로 공천 신청을 냈다가 떨어지고 군소 정당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순창 금융 조합장을 지냈으며, 전라북도 교육 위원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순창 향우회 명예 회장으로 활동하다가 1996년 9월 18일 오후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중앙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묘소]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선영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79년 순창 군민 의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