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868 |
---|---|
한자 | 智慧-非凡-邕夢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도룡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정미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8년 2월 - 「지혜롭고 비범한 아이, 옹몽진」 『순창의 전설』에 수록 |
---|---|
채록지 |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도룡리 도사 마을 |
성격 | 인물담 |
주요 등장 인물 | 옹태운|옹몽진|군수 |
모티프 유형 | 비범한 아이|문재가 뛰어난 아이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도룡리에서 옹몽진과 관련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지혜롭고 비범한 아이, 옹몽진」은 순창 출신의 실존 인물인 옹몽진(邕夢辰)이 어려서부터 비범하였음을 전하는 인물담이다. 동지중추부사까지 이른 옹몽진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문재(文才)가 뛰어났고, 매사에 신중하고 대담하였다. 훗날 고을 군수를 할 때에는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으며, 청백리로 이름을 날렸다.
[채록/수집 상황]
1998년 2월 순창 문화원에서 간행한 『순창의 전설』의 105~107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양정욱이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도룡리 도사 마을에서 주민 양병해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내용]
옹몽진의 아버지 옹태운(邕太雲)은 오산 아래[지금의 순창 향교 자리]에서 살았는데 집이 가난하여 오두막집에서 살았다. 하루는 신임 군수 이소(李韶)가 동헌 온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오산 아래 작은 오두막집이 갑자기 오색의 구름으로 뒤덮이더니 그 속에서 황룡 한 마리가 여의주를 물고 하늘 높이 오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급히 통인을 불러 꿈에 본 오두막집이 어디인지를 물으니 통인은 옹태운의 집이라 알려 주었다. 군수는 태운을 불러 자초지종을 묻자 태운은 겸연쩍어 하며 “오늘 소인놈이 자식을 보았습니다요.” 하였다. 군수는 크게 기뻐하며 “내가 꿈에 용을 보았으니 이름을 ‘몽진’이라 하거라. 그 아이는 훗날 크게 될 인물이니 아무쪼록 잘 키우도록 하여라.” 하고는 미역 다섯 장과 쌀 서 말을 하사하였다.
몽진은 어릴 적부터 남달리 총명하였다. 몽진이 아홉 살 때 마을의 한 젊은 아낙이 죽어 상여 굿이 열리고 있었는데, 그 처량한 정경을 보고 만사를 지어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열두 살이 되던 해에는 군수가 고을에 있는 젊은 청년 문사들을 초청하여 광덕산으로 유람을 갔는데, 그때 함께 간 몽진은 군수의 명을 받고 「유광덕산기」라는 기행문을 지어 세상을 또 한 번 놀라게 하였다.
옛날 지방 관아에 있는 향리들은 방립이라고 하는 갓을 썼는데, 그 갓의 테가 너무 커서 얼굴을 뒤덮을 뿐만 아니라 무거워서 항상 머리를 숙이고 다녀야 할 정도로 매우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웠다. 그러나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관습이었기에 어느 누구도 불평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 몽진은 성주에게 「탈향리방립문」이라는 글을 지어 조리 정연하고 호소력 있게 방립을 쓰는 폐해를 지적하고 시정해 줄 것을 건의하여 관부를 놀라게 하였다. 그때 나이 열여섯이었다.
이렇듯 몽진은 어린 시절부터 문장에도 뛰어났지만 담대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관장마다 몽진과의 이별을 아쉬워하였다. 언젠가는 새로 부임한 군수가 우연히 몽진의 왼발 장심에 열두 개의 반점이 있는 것을 알고 크게 놀라며 “내 발바닥에는 하나밖에 없는 반점이 너에게는 열두 개나 있으니 이는 필시 대길지상이라.” 하면서 “지금 네 처지가 이러하나 훗날 반드시 귀하게 되리라.” 하면서 더욱 아끼고 사랑하였다 한다.
또 어느 해 여름, 동헌 마루 들창문을 여름철에는 들어 올려 열었다가 해가 지면 내려 닫고 하는데 그날도 해가 기울어 문 닫을 시간이 되었다. 군수는 물 한 주발을 매달린 문짝 위에 몰래 올려놓고 몽진을 불러 “오늘은 네가 문을 닫도록 하여라.”라고 명하였다. 몽진은 공손히 대답을 하고는 일어서더니 어디서 기다란 막대기 하나를 들고 와 매달린 문짝 위를 낱낱이 쓸어보고 나서야 내려 닫았다. 물론 사발의 물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내려놓았다. 이것을 본 군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듯 몽진은 어려서부터 매사에 신중하고 지혜로워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옹몽진은 장성하면서 문장이 더욱 일취월장하여 1545년(명종 1)에는 28세로 사마시에 급제하였고, 1552년(명종 8)에는 35세로 대과에 급제하였으며, 1555년(명종 11) 38세로 중시에 급제한 후 음성, 청하, 영산, 영덕 등지의 군수와 판관을 역임하였다. 후에 충청 도사, 형조 좌랑을 거쳐 병조 정랑에 이르고 수직으로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도 역임하였다.
[모티프 분석]
「지혜롭고 비범한 아이, 옹몽진」의 주요 모티프는 ‘비범한 아이’, ‘문재가 뛰어난 아이’ 등이다. 대개 높은 관직에 올랐거나 훌륭한 일을 한 사람에 대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비범함으로 가득하다. 어릴 적부터 남달리 총명했다든가 문재가 뛰어났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그 사람의 훌륭함을 더욱 빛나게 한다. 옹몽진은 일개 산중 고을 관아에 속한 향리 출신자였지만 조정에서 청백리로 대접받고 높은 벼슬에까지 올랐으니 순창에서 그의 어린 시절 비범함을 전하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지혜롭고 비범한 아이, 옹몽진」은 없는 것을 꾸며낸 것이 아니라 실재 자료가 전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옹몽진의 비범함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