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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암산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2033
한자 鷲岩山里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나하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

[정의]

조선 시대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도기소가 있던 마을.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도기소(陶器所)가 하나이다[군의 동쪽 19리(약 7.46㎞) 취암산리(鷲巖山里)에 있는데, 모두 하품이다][陶器所一(在郡東十九里鷲巖山里, 皆品下)]”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세종실록지리지』는 세종의 명에 의해 전국의 지리 상황을 알 수 있게 편찬한 책으로 1424년(세종 6)부터 1432년(세종 14)까지 조사하여 제작되었다. 단순히 땅의 위치뿐 아니라 지역의 생산품과 토지 상태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조선의 자기소(磁器所)와 도기소에 관한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도자기의 질에 따라 상품·중품·하품으로 구분하여 표기하였다. 조선 시대 도기소 및 자기소가 밀집된 곳은 전라도·경상도·충청도였으며, 이 세 도에서 집중적으로 백자와 분청사기를 제작하였다.

그중 자기소에서는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분청사기와 백자를 구웠고, 도기소에서는 분청사기와 기와 같은 와기(瓦器) 등을 제작하였다. 자기소와 도기소가 아닌 기타 가마터에서도 분청사기와 백자 조각 등이 출토되어 실제로는 당시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것보다 더 많은 가마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 시대 전라도는 대표적인 도자기 생산 지역으로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총 185개의 도기소 중 도내에 39개소가 있어 전국에서 가장 많다. 이 중 하나가 전라도 순창군에 있었는데, 바로 순창군의 동쪽 약 7.46㎞[19리]에 있는 취암산리에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제작되는 도기(陶器)는 하품으로 민간용 자기로 기록되어 있다. 도기소가 있었던 이유는 땅이 메말라 논이 5분의 2가 되지 못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취암산리에 있던 도기소가 언제 없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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