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20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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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夏榮施惠碑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적성로 576[내월리 620-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진돈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내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조하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시혜비.
[개설]
조하영의 본관은 옥천(玉川)[순창의 고호], 자는 관선(寬善), 호는 경은(耕隱)이다. 모충재(慕忠齋)조여관(趙汝寬)[1557~1592]의 후손이고, 가선(嘉善) 조상평(趙相枰)의 아들이다. 음사(蔭仕)로 조선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의 능을 관리하는 강릉 참봉(康陵參奉)을 지냈다.
[건립 경위]
참봉 조하영(趙夏榮)이 주민들의 토지세를 적게 거두어 들여 그 혜택을 본 사람들이 1924년 공적을 치하하여 비를 세웠다.
[위치]
조하영 시혜비(趙夏榮施惠碑)는 인계면 행정복지센터에서 국도 21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 나오는 순창군 적성면 내월리 620-1번지[적성로 576]에 있다. 가까이에 커다란 선돌이 있다.
[형태]
비석의 형태는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양식을 따랐고, 좌대(座臺)와 개석(蓋石)을 갖추고 있다. 좌대는 높이 80㎝, 너비 55㎝, 두께 19㎝이고 비신은 높이 110㎝, 너비 45㎝, 두께 16㎝이며, 개석은 높이 76㎝, 너비 46㎝, 두께 33㎝이다. 좌대와 개석, 비신 모두 화강암을 사용하였다.
[금석문]
비의 전면에는 ‘참봉 조하영 시혜비(參奉趙夏榮施惠碑)’라 쓰고 좌우에 주민들에게 베푼 내력을 시로써 기록하였다. 글자는 모두 해서로 썼으며, 우측에는 ‘갑자 십일 월’[1924년]이라 새겼다. 내용을 기록하면 다음과 같다.
연봉소겸(年逢少歉)[한해 적은 흉년이라도 만나면]
토세특견(土稅特蠲)[토지세를 특별히 감면해 주셨네]
위강시사(魏絳施舍)[진(晉)나라 위강(魏絳)처럼 희사하니]
고소의전(姑蘇義田)[고소성(姑蘇城)에서 살았던 범중엄(范仲淹)의 의전(義田)이로다]
한여감우(旱餘甘雨)[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고]
한후양춘(寒後陽春)[추운 후에 따뜻한 봄같네]
비도석명(非徒石銘)[비석에 새긴 것 뿐 만 아니라]
구비행인(口碑行人)[행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네].
『조선 환여 승람』에 의하면, 조하영은 “천품이 공적이나 사적으로 자상하면서 너그럽고, 조금도 사람에게나 자신에게 기뻐함과 싫어함이 없었네. 항상 동일하게 보면서도 해년마다 섣달에는 고을에서 어려운 마을 사람들을 진휼하니, 모두 칭송하며 비를 세웠네[天稟慈厚 於公於私 少無喜惡 於人於我 常視同一 每當歲臘 賙給鄕里 咸頌立碑]”라고 하였다. 『순창 군지』(1957)에서는 “천품이 인자하여 조금도 기뻐하거나 싫어하는 내색이 없었고, 해년마다 섣달에는 고을의 어려운 사람들을 진휼하였네[天稟仁慈 少無喜惡 每當歲臘 賙給鄕坊]”라고 하였다. 위의 내용으로 보아 참봉 조하영은 타의 모범이 되었으며, 어려운 사람들을 구휼하는데 힘썼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