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20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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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汝光妻竹山安氏旌閭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우곡리 우곡 마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승대 |
건립 시기/일시 | 1822년 - 이여광 처 죽산 안씨 정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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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이여광 처 죽산 안씨 정려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우곡리 우곡 마을 |
성격 | 정려 |
관리자 | 이학신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우곡리에 있는 이여광 처 죽산 안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조선 후기의 정려.
[위치]
이여광 처 죽산 안씨 정려(李汝光妻竹山安氏旌閭)는 순창군 풍산면 우곡리 우곡 마을 당산나무 아래에 있다.
[변천]
이여광 처 죽산 안씨 정려는 1822년(순조 22)에 세워졌다.
[형태]
2기둥 석(石) 정려이며 규모는 43㎝×57㎝×6㎝이다. 죽산 안씨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내가 일찍이 왕감주의 글을 읽었는데 죽어서 열녀가 되기는 쉬우나 죽지 않고 열녀가 되기는 어렵다는 말에 일찍이 의심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와서 유인 죽산 안씨의 행록을 지으면서 진실로 살아서 열부가 되는 것이 어려운 것임을 알았다. 유인 안씨는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려서부터 날마다 행하는 모든 일을 부모의 뜻에 어기지 아니하여 효순이라 불렀다. 친정 부모를 모시던 효성으로 시부모를 모시니, 그 효성에 마음과 몸이 편안하셨고 예를 지켜 남편을 섬기니 남편이 번거로움이 없었다.
불행하게도 남편께서 우연히 괴상스러운 병에 걸려 누워 있음에 백방으로 약을 구해 드리고 목욕재계하고 북두칠성에 빌었으나 끝내는 목숨을 구해 내지 못하고 세상을 달리 하였다. 같이 죽으려고 여러 날 밥을 먹지 않자 시부모께서 눈물을 흘리며 ‘네가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죽은 자식이 할 효도를 누가 할 것이며 또 너의 남편 초상은 누가 치를 것이냐. 그리고 너의 남편이 말없이 너에게 부탁한 일을 생각하지 않느냐’ 하시니 유인이 문득 마음에 깨닫는 것이 있어 태도를 고쳐 열심히 집안일을 돌보고 길쌈을 충실히 하며 조금도 슬퍼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시부모를 끝까지 잘 모셨고 선영을 받들었으니 자기가 마음먹었던 그대로 행하여 죽어서 열부가 된 사람과 비하면 어떤 사람이 어렵고 어떤 사람이 쉽겠는가. 유인은 평소에 부모를 잘 모시고 돌아가심에 초상 장사며 제사를 정성껏 모시고 유복자 자식을 잘 가르쳐 훌륭하게 성장시켜 전주 이씨 가문을 이어 왔으며 고을에서 비를 세워 주고 조정에서 명정을 내리게 하였다.
손자 이현구 처 옥천 조씨도 할머니 열행을 본받아 열부가 되므로 한 집안에서 이열(二烈)이 되어 전주 이씨 가문을 후세에 빛나도록 하여 두 곳에 정려비가 세워졌다. 현손 이정홍 자 상규·남규·순규·인규·철규·용규·치규, 이정팔 자 동규·병규·만규·종규, 이학신, 학수, 학이, 창남, 학민, 동원, 진흥, 경모, 성윤.”
[현황]
전주 이씨 가문의 이학신이 관리하며,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이여광 처 죽산 안씨 정려는 시부모 봉양, 남편 병간호, 자식을 훌륭히 키워 낸 대표적인 열녀인 죽산 안씨의 행적을 기리는 유적으로 더욱 보존 관리가 잘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