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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1486
영어음역 Patjungmeokgi
영어의미역 Eating Red Bean Porridge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집필자 김영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시풍속
의례시기/일시 동지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동지에 팥으로 쑨 죽을 먹는 풍속.

[개설]

팥죽먹기는 매해 동짓날을 맞이하여 팥을 푹 삶아 으깨어 거른 물에 쌀을 넣어서 쑨 죽을 먹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지를 작은설이라고 하여 정초에 떡국을 먹듯이 동짓날에는 팥죽을 먹어야만 한 살을 더 먹게 된다고 믿었다. 때문에 반드시 팥죽을 쑤어서 새알심을 시식삼아 먹고, 또 사당에 차례를 지냈다. 요즘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문 죽 집에서 팥죽을 구입해서 먹지만 아직도 구로 지역에는 동짓날 팥죽을 직접 쑤어 먹는 가정이 남아 있다.

[연원 및 변천]

동지 때 팥죽을 쑤는 이유는 옛날부터 귀신은 특히 붉은 팥을 가장 무서워한다고 하여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팥죽을 쑤어 뿌리게 된 것이라고 한다. 동짓날 팥죽을 쑨 유래에 대해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는 이렇게 전해진다.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역신(疫神)[전염병 귀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싫어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 것이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여겼으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다. 절에서도 죽을 쑤어 대중들에게 공양(供養)한다. 팥죽을 먹어야 겨울에 추위를 타지 않고 공부를 방해하는 마구니[귀신]들을 멀리 내쫓을 수 있다고 여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이미 동짓날에 액운을 막는다 하여 쑤어 먹었다는 기록이 『목은집(牧隱集)』, 『익재집(益齋集)』 등에 보인다. 이들 서적에 의하면, 팥죽을 삼복(三伏) 중에서도 더위를 먹지 않고 병에 걸리지도 않는다 하여 퇴서피사(退署詖辭)의 뜻으로 먹었다. 지방에 따라 초상 때나 이사하였을 때도 쑤어 먹으며, 집안의 구석구석에 뿌린다. 그런데 동지가 초승[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하며,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고 대신 팥 시루떡을 쪄서 먹었다 한다. 팥죽이든 시루떡이든 시원한 동치미를 곁들이면 그 맛이 더욱 일품이다. 고려시대에는 ‘동짓날은 만물이 회생하는 날’이라고 하여 고기잡이와 사냥을 금했다고 전해진다.

[절차]

동지에는 어느 집에서나 팥죽을 쑨다. 팥죽은 팥을 후루루 삶아 첫물을 버리고 새물을 부어 삶아야 쓴 맛이 없다. 푹 삶은 팥을 굵은 체에 걸러서 오래도록 달이다가 쌀을 넣고 잘 퍼졌을 때 새알심[옹심이]을 넣는다. 새알심은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작은 새알만한 크기로 동글동글 빚어 둔다. 소금으로 간을 하여 그릇에 담고 식성에 따라 꿀이나 설탕으로 단 맛을 더한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속담에도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동지 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오류1동 주민 김범자[여, 68]와 정영애[여, 76]에 의하면, 옛 구로 지역의 주민들은 팥죽을 쑤어 먼저 사당에 올려 차례를 지내고 다음에 방과 마루, 부엌과 광 등에 한 그릇씩 떠다 놓고 대문이나 벽에다 죽을 뿌렸다고 한다. 팥죽의 붉은 색은 양(陽)의 색으로써 귀신[陰鬼]을 쫓는다는 믿음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그런 연후에야 식구들에게 팥죽을 먹었는데, 이 때 옹심이[새알심]를 자기 나이 수대로 넣었으며, 또한 자신들이 쑨 팥죽을 이웃과 서로 나누어 먹으며 친교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렇게 구로 지역의 주민들은 팥죽을 먹음으로써 마음속의 사악함을 깨끗이 없애고 새로운 한해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아직도 동짓날에 오류동, 궁동, 천왕동 일대에서는 팥죽을 쑤어 먹고 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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