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봉동 취재가 한창이던 때는 2010년 5월, 마침 6·10지방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거리에는 홍보 전단이 가득했고 만나는 사람마다 빠지지 않고 선거 이야기를 했다. 유흥열[1945년생] 씨를 만날 때도 그랬다. 유흥열 씨는 구청장 후보 명함을 내밀며 자기소개를 했다. 지금은 모 정당의 홍보를 맡아서 하고 있으며 40년 동안 가리봉동에서 살았으니 여기가 고향이나 마찬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구로공단이 있던 곳. 대한민국 수출의 10%를 담당했던 산업 1번지. 수많은 여공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있던 곳. 바로 가리봉동이다.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화목한 가정에서 평범한 유년 생활을 보내고~’로 시작하는 교과서 같은 이야기와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일을 하고, 좁은 방에서 언니·동생과 부대끼며 살아야 했...
1998년, 정부가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면서 시작된 금융 위기로 대한민국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많은 사람이 원치 않는 퇴직을 했고 이어지는 기업들의 부도로 인해 거리로 몰려난 사람들도 늘어났다. ‘노숙자’, ‘명퇴자’, ‘실업자’가 시대의 아이콘처럼 등장했다. 가리봉동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가리봉동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은 이 동네 재산가들이 1998년, 이른바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