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도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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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징맹이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악명 떨친 징맹이고개 도둑」은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전해지는 징맹이고개[景明峴]에서 악명을 떨친 도적 이야기로서, 이들로부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천명이 모여 함께 고개를 넘었다는 일명 천명고개에 대한 지명유래담이다. 옛날 구로를 포함하고 있던 옛 부평부에는 크고 높은 고개가 있었다. 지금의 계양구 계산동에서 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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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년 문신 이규보가 계양의 초정을 다시 짓고 나서 지은 한시. 「초정시(草亭詩)」는 1220년(고려 고종 7)에 이규보(李奎報)[1168~1241]가 계양부사로 재직할 때 무너져 버린 초가로 지은 정자, 곧 초정(草亭)을 다시 지으며 풍광을 노래한 오언율시(五言律詩)이다. 초정은 지금의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770번지 부근에 있었다. 1219년에 계양도호부 부사로 좌천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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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년부터 1308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고려시대의 지방 행정 구역 명칭.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고려시대 최고의 문인 이규보(李奎報)가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 지방관으로 부임한 기록이 실려 있다. 계양도호부는 고려 전기에는 수주(樹州),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로 칭해졌다. 수주는 1150년(의종 4) 읍격(邑格)이 한 등급 높아져 안남도호부가 되었고, 12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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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조 시기[918~1392] 구로 지역의 역사. 고려시대에 구로 지역은 행정구역상 수주(樹州)였다. 수주는 원래 고구려의 주부토군(主夫吐郡)인데 신라 경덕왕이 장제군(長堤郡)으로 고쳤다. 후삼국시대에 궁예 세력의 지배를 받다가 곧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고려 초에 수주로 고쳤고 995년(성종 14)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이를 없앴으며, 1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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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8~1310년 구로 지역을 관할하던 고려시대의 지방 행정 구역. 1308년(충렬왕 34)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를 비롯하여 여러 곳을 목(牧)으로 승격시켰는데, 그 이유는 국가 재정의 충실을 기하기 위하여 전국에 전민계점사(田民計點使)를 파견하여 인구가 많은 지역은 임시로 목을 설치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에 전민계점사업(田民計點事業)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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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계양도호부 태수를 역임한 문신. 손득지(孫得之)와 관련하여 알려진 사실은 거의 없다. 다만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이규보·이인로(李仁老) 등과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한림(翰林)으로 활동했다는 사실과, 지금의 구로 지역 일대가 포함된 부평의 옛 지명인 계양도호부의 태수를 역임했다는 내용만이 전할 뿐이다. 또한 진화(陳澕)의 전기인 「매호공소전(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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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계양도호부 출신의 문신. 본관은 부평(富平). 초명은 습경(襲卿). 손변(孫抃)[?~1251]은 과거에 급제하여 천안부판관(天安府判官)으로 나아갔다가 치적이 드러나 공역서승(供驛署丞)에 특진되었다. 1226년(고종 13) 금나라의 우가하(亏哥下)가 몽고군으로 변장하고 의주와 정주 지방에 침입해 오자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서북면병마판관(西北面兵馬判官)으로서 병마부사 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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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서울특별시 구로구의 역사. 한반도 중앙부에 있는 서울특별시 구로구는 1980년에 경기도 시흥군 상북면(上北面)·동면(東面), 경기도 부평군 수탄면(水呑面),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일부 지역을 편입하여 이루어졌다. 한강 유역에 자리 잡은 구로구는 기름진 평야 지대가 있을 뿐 아니라 육로·수로 교통의 요지이자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한 입지 조건을 갖추어서 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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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문장가. 이규보(李奎報)[1168~1241]는 현재의 부평 지역 지방관인 계양도호부사를 지낸 인물이다. 이때 관장하던 지역이 현재의 구로구 일대를 포함하고 있었다. 관직에서 은퇴 후 현재의 금천구 인근에서 은거하였다고 전하는데, 1995년 구가 나뉘기 전에는 구로구에 속하였다. 본관은 황려(黃驪).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