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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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문신 허봉이 부평의 객관을 소재로 지은 한시. 「부평객관(富平客館)」은 허봉(許篈)[1551~1588]이 1949년 서울특별시로 편입되기 전 구로구의 일부 지역이었던 부평군의 어느 객관에서 쓴 한시로, 『하곡집(荷谷集)』 ‘시초보유(詩抄補遺)’에 수록되어 있다. 허봉은 함경도 갑산에 유배되었다가 돌아온 후 인천과 부평 간을 오가며 생활하였는데, 이 작품은 인천으로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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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 송국준이 민중의 곤궁한 삶을 소재로 지은 한시. 「부평촌속(富平村俗)」은 1949년 서울특별시로 편입되기 전 구로구의 일부 지역이었던 부평군의 부평부사를 지낸 송국준(宋國準)[1588~1651]이 부사를 사임하고 인천에 낙향한 뒤에 다시 부평을 방문하여 지은 시이다. 그의 문집 『화방집(畵舫集)』에 실려 있다. 부역과 조세로 인해 가난하고 곤궁한 삶을 살아가는 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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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의 손자 이식이 부평의 농가 생활을 소재로 지은 한시. 「제부평촌장(題富平村庄)」은 부림군(富林君) 이식(李湜)[1458~1488]이 1949년 서울특별시로 편입되기 전 구로구의 일부 지역이었던 부평군에 본집 이외에 따로 장만하여 둔 집을 배경으로 하여 쓴 시이다. 이식은 시문에 능하였고 명창으로 알려졌으나 30세에 요절하였다. 「제부평촌장」이 실린 『사우정집(四友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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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온수동에 있던 자연마을. 1914년 4월 1일 부평군이 인천군과 통합되어 부천군이 됨에 따라 부평군 수탄면 궁리는 부천군 계남면 궁리가 되었다. 1931년 4월 1일 계남면이 소사면으로 변경되었고, 1941년 10월 1일 소사면이 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부천군 소사읍 궁리가 되었다. 1963년 1월 1일 부천군 소사읍 일부가 서울시에 편입될 때 궁리는 서울특별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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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부터 1973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조선총독부는 1914년 3월 1일 부(府)·군(郡)을 폐합하였고, 4월 1일에는 면(面)의 폐합을 단행하였다. 그 기준으로 부는 조계지(租界地)를 포함하여 시세 시행 지역과 동일하게 하였고, 군은 면적 약 40방리(方里)에 인구 약 1만 명, 면은 면적 약 4방리에 800가구로 하여 전국을 12부 220군 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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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부터 1931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일제강점기의 행정 구역. 부천군 계남면은 1914년 신설된 부천군의 15개 면 가운데 하나로 계양산 남쪽 마을 내지 동리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부천군 계남면은 1914년 시행된 일제의 지방 행정 체제 개편 방침에 따라 신설되었다. 일제는 식민 통치의 효율적 진행을 위해 군·면 통폐합을 단행하였는데, 군과 면의 수를 줄여 지방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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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부터 1941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일제강점기의 행정 구역. 1914년 3월 1일부터 시행된 부령 제111호에 따라 부천군이 신설되었고, 이때 신설된 부천군의 15개 면 가운데 부천군 계남면은 기존 부평군의 석천면·수탄면·옥산면을 통합하여 새롭게 설치되었다. 이후 1930년 12월 읍제(邑制)가 제정되었고, 1931년 4월 1일부터 시행됨으로써 지방 제도 전반에 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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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4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근대 개항기 및 일제강점기의 행정 구역.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전문 6조의 칙령 제98호에 따라 지방 제도의 일대 개혁이 단행되어 482년간 계속되어 온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 337군제가 시행되었다. 이때 종래의 부(府)·목(牧)·군(郡)·현(縣) 등이 대부분 군으로 통일되면서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는 부평군(富平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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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4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근대 개항기 및 일제강점기의 행정 구역. 1895년(고종 32) 5월 26일 개화파 정부는 지방 행정의 효율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지방 제도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는 농민 전쟁으로 폭발하였던 당시 향촌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중앙 정부의 대응책이기도 하였다. 과다한 지방 관원의 수를 대폭 축소하고, 지방 행정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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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4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근대 개항기 및 일제강점기의 행정 구역. 1895년(고종 32) 5월 26일 개화파 정부는 지방 행정의 효율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지방 제도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는 농민 전쟁으로 폭발하였던 당시 향촌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중앙 정부의 대응책이기도 하였다. 과다한 지방 관원의 수를 대폭 축소하고, 지방 행정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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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년부터 1895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조선 시대의 행정 구역. 1454년(단종 2)년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당시 부평(富平)은 “서쪽으로 대해(大海)까지가 10리, 남쪽으로 인천까지가 10리, 북쪽으로 김포까지가 10리다. (중략) 호수(戶數)가 429호, 인구가 954명, 군정(軍丁)은 시위군(侍衛軍)이 20명, 선군(船軍)이 128명이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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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천왕동에 있던 자연마을. 부평말은 과거 부평군의 끝에 위치한 마을로 시흥군과 접해 있다는 뜻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현재는 세 가구 정도만 남아 있고, 작은 공장과 몇몇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밭농사와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시설재배도 이루어지고 있다. 마을의 남쪽은 경기도 광명시에 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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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서울특별시 구로구의 역사. 한반도 중앙부에 있는 서울특별시 구로구는 1980년에 경기도 시흥군 상북면(上北面)·동면(東面), 경기도 부평군 수탄면(水呑面),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일부 지역을 편입하여 이루어졌다. 한강 유역에 자리 잡은 구로구는 기름진 평야 지대가 있을 뿐 아니라 육로·수로 교통의 요지이자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한 입지 조건을 갖추어서 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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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평군수를 역임한 문신. 이근용(李根鎔)은 1890년(고종 27) 남평군수(南平郡守)를 지내다가 이듬해 함흥과 영흥 본궁(本宮)의 대대적인 수리를 맡은 공으로 정3품 통정대부 이상의 품계로 가자(加資)되었다. 1894년(고종 31) 현재의 구로 지역이 포함되었던 부평군의 군수를 역임하였으며 이어 1904년(고종 41) 김해군수로 임명되었다. 1905년 평리원검사(平理院檢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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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인문지리는 지표상에서 인간의 다양한 활동에 의해 형성되는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경관을 포함하며, 세부적으로는 문화 현상, 경제 현상, 사회 현상, 도시 현상, 인구 현상, 교통 현상 등을 포괄한다. 인문지리에서 주요한 내용으로 다루는 요소는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인구 집단의 공간 분석으로서 지표상에 퍼져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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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설치되어 구로 지역을 관할하였던 근대 개항기의 행정 구역. 1895년(고종 32) 5월 26일 개화파 정부는 지방 행정의 효율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지방 제도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는 농민 전쟁으로 폭발하였던 당시 향촌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중앙 정부의 대응책이기도 하였다. 과다한 지방 관원의 수를 대폭 축소하고, 지방 행정 업무를 분화함으로써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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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 국가의 영역을 행정상으로 나눈 단위. 현재 구로구의 행정 구역은 구로1동·구로2동·구로3동·구로4동·구로5동, 가리봉동, 신도림동, 고척1동·고척2동, 개봉1동·개봉2동·개봉3동, 오류1동·오류2동, 수궁동 등 총 15개 행정동과 신도림동, 구로동, 가리봉동, 고척동, 개봉동, 오류동, 온수동, 항동, 궁동, 천왕동 등 10...